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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법 어기며 회계 정보 숨기는 사립대 … 수 년간 불법 그대로 방치한 교과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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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수도권 주요 사립대학들의 인터넷 홈페이지상 경영공시를 들여다봤다. 사립학교법 시행령에 따르면 학교법인은 그해의 회계결산서·부속명세서·감사보고서 등을 홈페이지에 1년간 공개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공개할지에 대해서는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 등에 서식까지 자세히 규정돼 있다. 그러나 법이 정한 보고서를 빠짐없이, 정해진 양식대로 공개한 대학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홈페이지 정보만으로는 대학들이 어떤 투자를 어디다 하고 있는지, 그것이 적법한지 등 핵심정보를 알 길이 없었다. 이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대학들의 결산 자료 전체를 입수해 분석했다. 일반인이 알아보기 어려운 내용이라 사립대 감사로 있는 공인회계사 등 전문가들이 지식을 보탰다. 예상대로 불법 투자 관행은 특정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서울의 한 사립대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결산 보고서의 한 페이지(윗 사진). 뭉뚱그려 보고했을 뿐 아니라 교과부 지정 서식을 공란으로 남겨 뒀다. 반면 하버드대결산서(아래)는 “지난해 27.3%의 투자손실을 봤다”는 총장 서한으로 시작한다.

아주대 독고윤(경영학) 교수는 “교육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인데 학교가 학생들이 낸 등록금 재원으로 불법 투자를 하고 분식회계까지 한 것은 신뢰를 스스로 포기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문제의 본질은 회계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가운데 불법 투자와 분식회계로 신뢰를 저버린 것이다. 투자 실패로 손실이 있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사립대들은 그간 해외 대학들을 예로 들며 펀드 투자 등의 재정 확보 방안을 요구해 왔다. 탐사기획팀은 미국 하버드 대학이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는 재무보고서를 살펴봤다. 국내 대학들과의 가장 큰 차이는 엄청난 손해를 봐도 그 액수까지 그대로 공개하는 투명성이었다. 사학진흥재단의 이상도 수석전문위원은 “등록금보다 기부금 의존도가 높은 미국 대학들은 용처를 투명하게 공개해 신뢰를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 과정과 실적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과 전문가가 진땀을 흘릴 정도로 교묘하게 숨기는 것. 어느 쪽이 장기적으로 대학에 이익일까. 매년 초 등록금 인상을 놓고 회계 정보를 공개하라는 학생들과 옥신각신하는 우리 대학들 스스로가 답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권근영 탐사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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