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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삼겹살·명품 유럽산 싸게 들어오고 선박·자동차·LCD 한국산 많이 팔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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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프랑스 론 지역의 보솅 와인. 한 달에 1000여 병이 팔리는 이 와인은 한 병에 5만원대로 녹록지 않은 가격이다. 이게 내년 하반기부터는 7000원가량 떨어진 4만원대에서 살 수 있게 된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기 때문이다. 내년 7월 1일부터 원가에 붙는 15%의 관세가 철폐된다.

# 국내 판매가격이 6790만원인 BMW 528i. 배기량 2966cc인 이 차량은 2014년부터 500여만원 싸진다. 현재 부과되는 10%의 관세가 2014년부터 없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수입차업계는 관세가 철폐되면 가격이 지금보다 7%쯤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경제권인 EU와의 FTA는 ‘매머드급’에 걸맞게 일상생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수입의 경우 와인과 자동차·명품 등 ‘사치품’에서 삼겹살·낙농제품 같은 먹을거리까지 폭넓은 영향을 받는다. 수출도 자동차를 비롯한 선박(122억 달러, 교역 비중 26.2%)과 휴대전화(50억 달러, 10.7%)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업계에선 일본과의 무역 역조가 완화되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관세 철폐 이후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진 유럽산으로 수입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사치품 수입 늘고, 제조업 수출 웃고=관세 철폐로 제품 가격이 하락하면 국민의 소득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이런 식으로 한국 국민이 얻게 될 경제적 혜택을 돈으로 따지면 320억 달러에 달한다는 게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추산이다.

당장 국민의 지갑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품목은 와인과 수입자동차·명품 등이다. 즉시 관세를 철폐하거나 길어도 5년 안에는 관세를 없애게 돼 있다.

특히 와인이 먼저 웃을 것으로 보인다. LG상사 트윈와인의 한지현 마케팅 팀장은 “FTA가 발효되면 30%가량 매출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고가 수입차의 경우 중대형 차량에 대한 관세가 없어지는 2014년 후엔 모델에 따라 값이 300만~2000만원 떨어지게 된다.

수출에선 자동차 분야가 단연 이득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EU는 전 세계 승용차 판매의 31%, 전체 자동차 판매의 25%를 자치하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이다. 그러나 일본(0%), 미국(2.5%), 캐나다(6%) 등에 비해 관세 장벽(승용차 10%, 상용차 22%)이 높다. FTA 발효로 관세가 철폐되면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이 이 거대 시장에서 제대로 붙어볼 여지가 커진다.

◆대일 역조 완화시킬 듯=관세가 사라지면 수입업체들의 선택도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예컨대 일본산을 쓰던 국내 기업은 유럽산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는 얘기다. 이른바 수입 다변화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337개 무역 업체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9%의 기업이 수입처를 EU로 전환할 계획이 있다고 응답했다. 조성대 수석연구원은 “중국산보다는 일본산과 미국산이 EU산과 직접 경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한·EU FTA가 과도한 대일 무역역조 해소에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반면 서비스업 개방으로 국내 관련업계의 경쟁 스트레스는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통신시장 개방으로 국제전화와 국제 전용회선 시장에 외국계 기업이 진출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 “피해 직불금 지급”=문제는 농업이다. 특히 축산·낙농업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FTA가 발효된 이후 15년이 지나면 돼지고기의 국내 생산액은 1214억원, 우유와 치즈 등 낙농 제품은 805억원가량 줄게 된다는 게 정부 추산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한·미 FTA를 계기로 수립한 FTA 종합지원대책(2008년부터 10년간 21조1000억원 지원)을 통해 취약 분야를 지원키로 했다. 규모가 큰 축산·낙농업자들은 축사 개축과 유통 시설 지원 등 산업화를 지원하고, 생계형 농민에겐 피해액의 80%까지 직불금을 지급하거나 폐업 보조금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농식품부 신현관 축산정책과장은 “한·EU FTA로 인한 피해 예상액의 90% 정도가 축산·낙농업에 쏠려 있어 다각적으로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며 “11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구체적인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창희·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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