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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87> 진짜 진신사리, 가짜 진신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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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풍경 1 : 스리랑카의 칸다시에는 ‘불치사(佛齒寺)’란 사찰이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의 치아 사리(舍利, 석가모니의 유골은 사리에 포함)를 모신 곳입니다. 그래서 이 사찰은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붓다의 사리 앞에서 절을 하고, 소원을 빌고자 숱한 사람이 불치사를 찾기 때문입니다. 수년 전에 불치사에 간 적이 있습니다. 치아 사리의 진품은 공개하지 않더군요. 대신 치아 사리와 똑같은 모형을 상아로 만들어서 전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사진 촬영은 금지돼 있었죠. 사리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현지의 관리인이 구석진 곳으로 데리고 가더군요. 그리고 “10달러를 주면 사진을 찍게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붓다의 사리가 있는 곳에서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 풍경 2 : 사람들은 ‘진신(眞身)사리’라고 하면 혹합니다. 2500년 전에 붓다가 남긴 육신의 일부를 친견(親見)하고 싶어 안달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짝퉁 진신사리’도 적지 않습니다. 역사적 기록과 근거도 없이 ‘석가모니 진신사리’라고 말하는 이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도의 쿠시나가라(붓다의 열반지)에서 땅을 파다가 나온 사리를 무작정 진신사리라고 우기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죠. 붓다의 권위를 빌어서 사람을 모으자는 속셈입니다.

# 풍경 3 : 오래된 탑을 열어보면 사리와 경전이 나옵니다. 어떤 탑에선 붓다의 진신사리가, 또 어떤 탑에선 고승의 사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주로 사리에 관심을 쏟습니다. 색깔이 어떻고, 개수가 어떻고, 모양이 어떻고, 어떤 재질의 병에 담겨 있는가를 따집니다. 아이러니컬하죠. 불교에선 “우리의 육신은 허망하다.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구성된 몸은 다시 지수화풍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라고 가르치는데 말입니다.

때로는 절집에서 ‘사리’에 더 집착하기도 합니다. 특히 큰스님의 다비식(시신을 화장하는 절집의 장례)을 앞두고 제자들은 뜻밖의 걱정을 합니다. “만약 사리가 안 나오면 어쩌나” “혹시 개수가 너무 적으면 어쩌나”하고 말입니다.

대체 ‘사리’가 뭘까요? 붓다가 남긴 ‘진짜 사리’는 과연 뭘까요? 사리는 우리 몸의 기운이 막힘 없이 흐를 때 생기는 골즙의 결정체라고도 합니다. 다시 말해 ‘막힘 없는 흐름의 결과물’이라는 겁니다.

2500년 전, 붓다는 눈을 떴습니다. 나와 세상, 그리고 우주의 이치에 눈을 떴죠. 그 눈으로 봤더니 세상은 막힘 없이 흘렀던 겁니다. 가령 강물을 보세요. 막힘이 없을 때 자유롭게 흘러가죠. 바위를 만나도, 언덕을 만나도, 들을 만나도, 산을 만나도 굽이굽이 흘러갑니다. 붓다가 봤더니 세상과 우주가 이미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던 겁니다.

붓다는 그걸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집착하지 마라. 집착하면 붙들게 되고, 붙들면 막히게 된다. 그럼 흐르질 못한다.” 그걸 끊임없이 설했던 겁니다. “네가 집착하는 대상이 실은 비어있다. 삼라만상이 비어있기에 비로소 흐를 수 있는 것이다. 그 비어있음을 봐라.”

제자들은 그런 가르침을 문자로 기록했습니다. 그게 바로 경전입니다. 그러니 경전에는 ‘막힘 없이 흐를 수 있는 비법’이 녹아 있습니다. 지지고 볶는 일상의 번뇌와 스트레스를 몽땅 녹이는 용광로가 들어 있는 겁니다. 그럼 다시 물어야죠. 붓다의 진신사리, 숨 쉬는 진신사리는 대체 뭘까요? 그렇습니다. 다름 아닌 경전입니다. 경전 속의 이치입니다.

왜냐고요? 경전 속의 이치가 막힌 걸 뚫기 때문이죠. 그래서 흐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 우리의 마음, 우리의 삶이 막힘 없이 흐르게 하는 겁니다. 결국 우리의 몸, 우리의 마음, 우리의 삶에도 사리가 생기게 되는 거죠. 사리를 만드는 사리(事理), 그게 진짜 사리니까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사리에 집착합니다. 개수에 집착하고, 크기에 집착하고, 색깔에 집착합니다. 설령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 100과를 두 손에 쥐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게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삶에서 사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뼛조각이 진신사리가 아니죠. 사리를 만드는 사리(事理), 그게 바로 진신사리입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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