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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한국 압축성장 이어갈 ‘씨앗’을 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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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1953년에 참전했다는 그는 “불과 60년 만에 한국이 이렇게 달라질 줄 꿈에도 몰랐다”는 말을 반복했다. 실제 우리나라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압축 성장의 기적을 이뤄냈다. 1945년 해방과 6·25의 잿더미 위에서 불과 60여 년 만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이면서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개최할 정도로 국력이 커졌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세대별로 씨 뿌리는 역할을 하는 세대와 그 열매를 거두는 세대의 사이클이 존재하는 것 같다. 경기에도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필자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 중에는 소위 ‘58년 개띠’라고 부르는 1958년생 출생자가 유독 많은 것 같다. 어느 날 58년 개띠인 한 선배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좋은 인재가 많은 해에 태어나셨느냐”고. “와인처럼 1958년의 빈티지가 그렇게 좋은 해였느냐”고 덧붙이면서. 선배의 답은 단순했다. “이유는 하나다. 그해 태어난 사람이 가장 많기 때문”이란 답이 돌아왔다.

대략 58년생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 출생한 세대는 오늘날의 발전을 일군 주역인 것 같다. 하지만 정작 그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비운의 세대이기도 하다. 90년대 말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것도 고생만 잔뜩 한 그들이었다.

역설적이지만, 지금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아웃도어 시장도 이분들이 기여한 바가 크다.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 자연스레 여가활동이 증가하는 것도 맞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한평생 직장에 몸담으면서 경제성장을 일궈냈던 이들이 구조조정이라는 이유로 직장을 잃으면서 가까운 산을 찾게 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 평균 수명 80세를 넘나드는 시대를 살다 보니 50대 초·중반에 직장에서 물러난 분들은 적어도 20~30년 이상을 직장 없이 지내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다.

필자는 6·25 전쟁이 한참 지난 다음인 베이비붐 세대의 중반쯤 해당하는 시기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 보릿고개를 겪기는 했지만, 앞선 세대와는 달리 이분들이 뿌린 씨앗의 혜택을 톡톡히 보기 시작한 행운의 세대다.

운이 좋았던 덕에 70년대 고도성장기 초반에 청소년기를 보냈고, 민주화 운동의 최절정기인 8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다. 80년대 ‘저금리·저달러·저유가’라는 이른바 3저에 힘입어 국제수지가 흑자로 반전되고 경제성장률이 연 10% 이상을 기록하는 등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리던 시대에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했다. 지금은 유행어가 된 ‘청년실업’ 등의 말은 들어볼 수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여기에 ‘우리사주’ 제도가 국내에 도입되던 때 직장생활을 시작한 덕에 정작 경제 발전에 기여한 바가 없음에도 압축 성장의 실질적인 혜택을 맛보기도 했다. 90년 대 말 외환위기 때에는 하급 관리자 직급이어서 구조조정의 아픔도 피한 소위 복 많은 세대가 우리였다.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인 가을을 맞아 새삼 앞선 세대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열매를 마음껏 맛본 우리 세대가 앞선 분들처럼 다음 세대를 위해 줄 수 있는 무엇을 만들었는지를 되돌아볼 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적어도 젊은 세대가 오롯이 설 수 있을 만큼의 씨앗을 뿌려뒀어야 했다. 앞선 세대가 뿌린 씨앗의 열매를 먹고 자라나는 게 다음 세대라면 이제 우리도 다음 세대를 위해 그들이 먹을 과실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그것이 앞선 세대가 베풀어준 많은 것에 대한 최소한의 책무다.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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