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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객 빠진 해운대를 즐기다

중앙일보

입력

부산 사람들은 한여름에는 해운대를 찾지 않는다. 사람에 치여 헉헉대느라 ‘동네 바다’의 운치를 느낄 수 없어서란다. 하지만 해운대는 늘 핫한 여행지다. 센텀시티와 벡스코를 중심으로 한 쇼핑 지구, 초고층 주상 복합 건물이 들어선 마린시티 신시가지가 개발되면서 대도시와 휴양지 느낌을 동시에 가진 곳이 됐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에게 이맘때 해운대에 가면 뭘 해야 되냐고 물었다. 토박이들의 추천을 종합해 보니 젊은 예술가들의 감각이 모인 달맞이 미술거리를 구경하고, 유람선에서 광안대교 야경을 본 다음 해안가 절경 따라 달빛 산책로를 걸어보자는 결론이 나왔다. 중간에 짬이 나면 해운대 온천수에 몸 담그고 바닷길 건너 자갈치시장으로 건너가도 좋다. 꽉 차게 즐긴 1박 2일 부산 여행기.

운치와 트렌디가 함께 모인 달맞이 미술거리
첫 코스는 해운대부터 송정까지 이어지는 8km ‘달맞이길’이다. 해운대 백사장의 동쪽 끝에서 시작되는 언덕길로, 원래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했지만 요즘은 ‘해운대 카페촌’이나 ‘달맞이 미술거리’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십여 년 전만 해도 ‘달맞이 살아요’라는 말은 부산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집 부자예요’라는 얘기였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조망이 좋아서 고급 주택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 부자들이 수영만 요트 경기장 근처의 신시가지로 옮겨가면서 전망 좋은 언덕길에는 주택 대신 화랑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금은 부산시립미술관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아트센터와 갤러리 수십 곳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달맞이 미술거리는 말하자면 ‘두 얼굴의 사나이’다. ‘조현화랑’이나 ‘코리아아트센터’ 등 현지 유명 갤러리들은 서울 쪽 화랑과 동시 기획전을 열거나, 외국 화가 초대전을 단독으로 개최하면서 인사동 못잖은 전시 기획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젊은 사진작가나 화가들이 오래된 아파트를 빌려 하우스 전시를 연다. 트렌디한 모던 갤러리와 운치 있는 아파트 쪽방 갤러리의 묘한 조화. 어느 쪽을 구경하든, 그게 지금 달맞이의 현주소다.
갤러리 구경이 끝나면 달맞이길 정상 ‘해월정’에 올라 바다 경치를 내려다보자. 해운대 도착 후부터 해월정까지 서너 시간이면 충분하다. 길 따라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미역과 멸치회로 유명한 ‘대변항’이 나오는데, 이맘때면 멸치회와 볏짚으로 구워낸 기장 꼼장어에 살이 차오르기 시작하니 좌판에서 맛을 봐도 좋다.


1_달맞이 미술거리에는 모던한 갤러리와 화랑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이곳 갤러리들은 서울과 동시 기획전을 열거나 해외 작가 초청전을 여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_부산 야경의 상징이 된 해운대의 밤 풍경은 기대보다 더 아름다웠다. 배를 타고 광안대교 방향으로 나가면 그 곳의 조명과 다리 야경도 인상적이다.

온천물에 발 마사지하고 수족관에서 상어 구경
해운대에서 딱 하룻밤만 보낸다면 파라다이스호텔을 추천한다. 신관 전체를 모던하게 리모델링해 깔끔하고 상쾌하게 쉴 수 있다. 로비 라운지 앞 정원으로 나가면 바로 바다와 연결되고 주변 관광지와 가까워 동선을 짜기에도 좋다.
파라다이스 호텔을 추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온천수다. 해운대에서 온천수가 나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적은데, 해수욕장 한편에는 자연 온천수로 만든 족욕장도 있다. 해운대를 가로질러 수십 동의 호텔과 콘도가 들어서 있지만 현지 온천수를 직접 사용하는 곳은 파라다이스호텔을 포함해 두 곳뿐이다. 파라다이스호텔은 신관 3층의 스파와 노천 수영장이 온천수로 운용된다. 이곳 야외수영장은 폭염과 폭우가 계속됐던 8월보다는 상대적으로 날씨가 상쾌한 지금이 더 잘 어울린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보다는 연인들의 발길이 조금 더 잦은 곳으로, 조용한 분위기에서 수영과 선탠을 즐길 수 있다.
아이들이 좋아할 곳을 찾는다면 이곳에서 1분 거리인 아쿠아리움에 가보는 게 좋겠다. 국내 아쿠아리움 중 규모가 제일 큰 곳으로, 상어 같은 희귀 물고기를 구경할 수 있고 가오리에게 직접 먹이를 주는 등 다양한 체험도 가능하다. 너무 어린아이들은 수족관 근처에 가면 무서워하는 경우도 있지만 서너 살 이상 된 아이들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좋아한다.


1_피서 인파가 한풀 꺾인 부산은 밤에 즐기기 더 좋다. 유람선에서 내다보는 수영만 근처 신시가지가 활기차 보인다.
2_해운대 아쿠아리움은 어린아이를 동반한 관광객들에게 ‘강추’다.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아 한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유람선 갑판에서 광안대교 야경을 보다
요즘 해운대에서는 크루즈나 유람선 여행이 인기다. 해운대에서 배를 탈 수 있는 곳은 해수욕장 양쪽 끝으로 하나씩 두 군데가 있다. 광안리해수욕장이나 다른 항구로 이동하려면 파라다이스호텔 바로 옆 유람선 선착장을, 해운대 앞바다와 광안대교 야경을 구경하려면 동백공원 쪽 선착장을 이용하는 게 좋다.
기자는 광안대교 야경 체험을 위해 저녁 7시발 유람선을 탔다. 선상에서 해산물 뷔페로 저녁을 먹고 야경을 구경하는 2시간 코스다. 사실 ‘바닷가 야경에 뭐 볼 게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수영만 요트 경기장 근처에 들어선 초고층 빌딩과 주상 복합 건물들이 만드는 야경이 굉장히 멋졌다.
흔히 유람선 야경이 훌륭한 여행지로 중국 상하이를 꼽는다. 황푸강 유람선에서 구경하는 동방명주와 상하이 시내 불빛들이 아름다워서다. 하지만 요즘 해운대 야경은 상하이 못지 않다. 게다가 여기는 바다 아닌가. 폭이 좁은 강물 위와는 뭔가 다른, 파도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나름의 운치가 있다. 사귄 지 100일 됐다는 대학생 커플부터 졸업 50주년 기념으로 여행을 왔다는 여고 동창 할머니들까지, 광안대교 야경 아래 선 사람들의 사연은 저마다 다양했다.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배에서 저녁을 먹으며 야경을 구경하는 코스도 있고, 밤 10시부터 12시까지 간단한 핑거푸드를 즐기면서 라이브 공연을 구경하는 유람선도 있으니 취향 따라 골라 타보자. 가격은 6만~8만원 선. 식사 대신 편하게 야경만 보고 싶다면 동백섬을 출발해 광안리를 돌아오는 1만 8000원짜리 유람선을 타도 된다.


바닷가 옆 숲길에 새단장한 달빛 산책로
부산 사람들에게 요즘 해운대에서 가장 ‘뜨는’ 곳을 꼽아달라고 하면 ‘문탠로드’라고 입을 모은다. 이 길은 달맞이길 초입부터 해월정까지 이어지는 숲길 산책로다. 갤러리와 카페가 모인 길은 해수욕장에서 신시가지 쪽으로 연결돼 있고, 문탠로드는 해안가를 따라간다. 낮에 미술관 구경할 때 한꺼번에 걷겠다면 오산이다. 이 길은 달빛을 맞으며 걸어야 제맛이다. 대낮에 햇빛을 맞는 게 ‘선탠’이듯, ‘문탠’은 달을 보며 밤에 걸으라는 의미다.
사실 부산에는 태종대 산책로나 절영도 해안 산책로 등 이름난 걷기 길이 많다. 그런 관광 길과 비교하면 문탠로드는 코스도 짧고 길 폭이 좁아 관강객들이 단체로 몰려가 걷기에는 다소 부족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문탠로드의 매력일 수 있다. 특히 밤이면 더욱 그렇다. 구불구불한 숲길 따라 오른쪽으로는 계속 바다가 보이고, 은근한 조명과 생각보다 밝은 달빛이 적당히 어울려 색다른 멋을 낸다. 좁은 숲길이어서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산책로가 평평하게 잘 닦여 있고 경사도 완만해서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었다. 중간에 화장실이나 매점 등 편의 시설은 없지만 천천히 걸어도 30분 정도면 충분히 지나갈 수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보자. 단, 조명이 어두운 편이어서 어린아이와 함께라면 조심조심 걷는 게 좋다. 산책로를 따라 해월정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청사포’가 나온다. 부산 전역을 통틀어 조개구이로 제일 유명한 곳이다. 해운대 맛집들은 대개 바캉스 시즌에 반짝 대목을 누리고 나머지 시즌에는 드문드문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게 보통이지만, 이곳 포장마차들은 부산 사는 단골손님 위주다. 큼지막한 키조개 몇 개를 숯불에 구워보니 해산물로 으뜸이라는 남해나 조개구이의 고향인 서해와 비교해도 부족할 게 없다. 단, 청사포에서 해운대로 돌아가려면 다시 걸어야 하니 너무 취하지는 말자. 물론 콜택시를 불러도 3000원이면 호텔까지 돌아갈 수 있지만 이왕 걷기 시작했으니 달맞이고개를 거슬러 가는 길을 추천한다.

기획_이한 기자, 사진_김연지
여성중앙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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