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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place 뜨는 상권 현지 르포] ⑫·끝 제주시 연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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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제주=김기환 기자

11일 제주 국제공항에 내려 택시를 탄 지 5분쯤 지났을까. 야자수가 줄지어 선 연동 거리에 들어서자 곳곳에 대형 관광호텔이 눈에 띄었다. 휴가철이 지났음에도 선글라스를 낀 채 핫팬츠에 민소매 차림으로 걷고 있는 관광객도 적지 않았다. 이곳에 사는 허용주(29·직장인)씨는 “연동은 관광객들에겐 ‘제주의 관문’이고, 제주 토박이들에겐 오래된 놀이터”라고 말했다.

제주시 연동에는 ‘제원 아파트 사거리’를 중심으로 쇼핑·유흥가가 번화하다. 제주도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핫 플레이스다. [제주특별자치도청 제공]

본지와 한국리서치가 제주도의 20~30대 젊은이 329명에게 물은 결과 가장 많은 사람이 신제주 연동을 핫 플레이스로 꼽았다. 인근 노형동까지 포함할 경우 절반 가까운 154명의 응답자가 신제주를 꼽은 셈이다.

연동은 과거 이곳이 ‘연골’로 불리던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밭이 대부분이었으나 1970년대 후반부터 신제주가 개발되면서 신도심으로 발전했다. 70년대 후반 제주도 최초의 아파트단지인 ‘제원아파트’ 단지가, 1980년대 초반에 도청·교육청·경찰청 등 주요 관공서가 이곳에 들어섰다. 관광산업이 활성화하면서 각종 호텔·유흥가가 들어선 것도 이 무렵이다.

교통이 발달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점이다. 공항에 내린 외지 사람들 상당수가 이곳 연동에 짐을 풀게 되는 이유다. 각종 호텔이 밀집한 데다 서귀포 등 관광지로 오가는 셔틀버스가 수시로 다닌다. 휴가를 내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우정호(28)씨는 “공항과 가깝고 교통이 편해 연동을 숙소로 잡았다”며 “밤에 숙소로 돌아오면 나이트클럽 등 유흥가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라고 말했다.

배후에 들어선 아파트단지는 연동 상권이 뜨는 데 힘을 실어 줬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연동에 인접한 노형동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조성되면서 연동 상권은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노형동에 대형 마트와 병·의원, 학원 등이 몰리면서 상권의 컬러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노형동에 거주하는 중산층이 소비를 위해 연동을 찾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41만4000명의 제주시 인구 중 약 20%인 8만9000여 명이 연동·노형동 인근에 살고 있다. 서귀포시 전체 인구가 15만3000명인 것을 감안하면 서귀포 인구의 절반보다 많은 주민이 연동 상권 일대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박용현(56) 제주도청 도시계획과장은 “신제주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80~90년대 사이라고 보면 된다”며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배후에 두고 각종 상가가 밀집하면서 상권이 발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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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관건=번화가의 중심은 제원아파트 사거리다. 이곳을 중심으로 한 신광로에는 각종 의류 소매점·화장품 가게 등이 밀집해 있다. 쇼핑을 하러 나온 10~20대가 많이 들르는 곳이다. 직장인 한주희(29·여)씨는 “백화점이 없기 때문에 옷을 사고 싶을 때 주로 이곳에 들르는 편”이라며 “웬만한 브랜드 옷은 다 있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골목 속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유흥 거리가 펼쳐진다. 제원아파트 맞은편 편의점(훼미리마트) 골목으로 들어서면 대부분이 음식점·주점이다. 천장이 열리는 것으로 유명한 나이트클럽도 성업 중이다. 몇몇 호텔에서는 카지노도 운영하고 있다. 이찬용(55) 연동상인연합회장은 “제주도 대부분의 관광지가 밤이 되면 특별히 할 게 없다는 평을 듣지만 연동 번화가는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곳이 많아 외지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최근 도청에서는 이곳 상권에 ‘신화의 거리’란 이름을 붙이고 정비하고 있다. 거리 곳곳을 깔끔하게 재정비하고 제주의 신화를 소개한 팻말을 심었다. 이야기가 있는 ‘테마 거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올해 말까지는 차 없는 거리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강한택(55) 제주도청 건설도로과장은 “이곳은 이미 충분히 성장한 상권이기 때문에 ‘성장’보다는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상인연합회에서는 연동 상권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 발행도 추진하고 있다.

◆‘괸당’ 문화의 한계=이곳 상권의 특징은 대형 점포보다 소매점이 많다는 것이다. 매장 규모 자체도 작은 편이다. 1990년 11월에 신한백화점이, 96년 4월에는 참피온백화점이 이곳에 들어섰으나 모두 폐점했다.

2005년에는 애월읍(제주경마공원 인근)에 대규모 쇼핑 아웃렛 건설이 추진됐으나 중소 상인들의 반발로 현재는 잠정 중단된 상태다. 이 같은 대형 백화점과 아웃렛의 실패를 두고 일부에서는 제주 특유의 ‘괸당’(친인척을 뜻하는 제주도 말) 문화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괸당 문화는 제주도 특유의 연고주의다.

제주도에 산 적이 있는 김주양(25)씨는 “제주도에서는 ‘나 오늘 괸당 떡볶이집 간다’ 식으로 괸당을 일상적으로 쓴다”며 “점포와 고객 관계도 한번 괸당으로 맺어지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끼리끼리’ 뭉치는 문화적 특성도 외부 자본을 바탕으로 한 대형 점포의 성공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소비자들이 새로운 점포보다 단골가게를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태유 세종대 유통산업학과 교수는 “괸당 문화는 지역 특성을 살린 점포를 성장시키는 순기능을 할 수 있지만 지나치면 변화의 수용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며 “이곳 상권이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좀 더 개방적인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움말=한국유통학회·세종창업연구소·제주특별자치도청·제주관광공사·제주시연동주민센터·제원아파트관리사무소·제주신라호텔



제주시 최초의 아파트 … 30여 년간 ‘약속 장소’명소로

랜드마크 제원아파트 사거리

제주 젊은이들은 특정 상점이 아니라 제원 아파트 사거리를 신제주의 랜드마크로 꼽았다. 사거리 자체가 오랫동안 연동 번화가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제원 아파트는 제주시 최초의 아파트 단지다.

1978년 7월 준공한 22동(628가구)짜리다. 내부는 50~116㎡로 중소형 규모다. 저층(5층) 아파트로 엘리베이터가 없다. 아파트 화단에는 키가 낮은 야자수가 늘어서 있다. 주차장이 부족해 길가에는 차가 빼곡하다.

아파트 건물에는 황토색 바탕에 ‘제원’이라는 파란색 글씨가 새겨져 있다. 30여 년 전 모습 그대로다. 그러나 아파트 앞을 나서면 완전히 다른 풍경을 만나게 된다. 아파트 앞 사거리 건너편에는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쇼핑가·유흥가가 펼쳐져 있다. 이곳이 약속장소로 삼기 좋은 곳 1위로 꼽힌 이유다.

강동우(51) 연동주민센터장은 “연동이 번화가로 성장한 30여 년 동안을 함께한 아파트”라며 “젊은 시절부터 ‘제원 아파트 사거리’를 약속 장소로 잡고 친구들과 만나곤 했다”고 말했다.

제주도 최초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였던 만큼 처음 이곳에 입주한 이들은 제주에서 소위 ‘잘나가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 아파트에 사는 양인희(45·주부)씨는 “80년대 초만 해도 제주도에 ‘아파트’란 개념이 없었을 때라 인기가 높았다”며 “의사·사업가·고위 공무원 등이 몰려 살았던 부자 단지였다”고 말했다. 소득 수준 높은 중산층의 밀집은 이 아파트 주변에 각종 상가가 들어서는 계기가 됐다.

최근 몇 년 새 중산층에게 인기를 끄는 곳은 인근 노형동 신시가지다. 김동호(44) 가나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제주에서 ‘좀 산다’ 하는 사람은 대부분 노형동으로 옮겼다”며 “제원 아파트는 오래되고 낡았지만 교통이 좋고 시내 중심에 있어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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