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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전 7시, U-17 여자 축구 팀에 미리 보내는 박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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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호 14면

스포츠계에는 “한·일전이라면 제기차기를 해도 관중이 모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마치 영원할 것처럼 한국과 일본의 라이벌 의식은 끝을 알 수 없다. 그리고 치열하다. 한국 입장에서 상대가 일본이라면 경기력의 차이나 저변, 인프라의 우열 따위는 눈곱만 한 고려 사항도 못 된다. 오로지 ‘죽을 각오로 싸워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사명감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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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경기할 때의 집중도와 타오르는 투지는 세대를 초월한다. 스포츠 전문 채널에서는 서울 장충동에서 열리는 리틀야구 경기를 가끔 중계한다. 코흘리개들이 배트와 글러브를 다루는 모습은 힘에 부쳐 보인다. 그들에게도 경쟁심과 라이벌 의식이 있겠지만 어른이 보기엔 귀여울 뿐이다. 그런데 이 코흘리개들도 일본과 ‘국제경기’를 할 때는 눈빛이 달라진다. 경기에서 이긴 한국 팀의 투수는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일본에는 절대 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마운드에서 쓰러진다는 각오로 던졌어요.” 코흘리개 투수의 말은 언제 어디선가 들은 듯 귀에 익다.

한국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해방 후 처음으로 일본과 축구 경기를 했다. 원정 경기였다. 당시 축구대표팀의 이유형 감독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만약 한·일전에서 이기지 못하면 선수단 모두가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이 말은 이 대통령이 했다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장택상 축구협회 회장은 “지면 현해탄을 넘어오지 말고 고기밥이 돼라”고 더 살벌하게 말했다고 한다.

일본을 상대할 때의 무시무시한 투지는 여자 선수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한국의 여자 17세 이하(U-17) 축구대표팀은 26일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U-17 월드컵 결승에서 일본과 격돌한다. 한국시간 오전 7시에 시작하므로 독자들은 중앙SUNDAY를 펼친 채 중계를 시청할지 모른다. 한국 선수들의 심장은 벌써 뜨겁게 달아오른 것 같다.

현지에서 날아온 뉴스에 따르면 선수들의 신경전이 대단하다고 한다. 일본 선수들은 식당에서 한국 선수들과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서 식사를 했다. 호텔 수영장으로 훈련하러 갔다가 한국 선수들이 먼저 도착해 수영하고 있는 걸 보고는 그냥 돌아갔다. 한국 선수들은 공용 컴퓨터 바탕화면에 일본 팀의 경기 장면이 깔려 있자 한국 팀의 경기 장면으로 바꿔 버렸다.

한국은 90년 9월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여자 대표팀의 첫 대결에서 일본에 1-13으로 크게 졌다. 당시 한국팀은 육상과 핸드볼·하키 선수 출신들로 급조된 약체였다. 하지만 옛날 얘기다. 한국 U-17 팀의 주 공격수 여민지는 93년생으로, 동대문에서 한국 여자 대표팀이 망신을 당할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현재의 U-17 팀 선수들은 2002년 월드컵 등 한국 축구가 맛본 영광의 순간들에 익숙한 세대다. 자랄 때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U-17 팀 선수들에게는 ‘4강’이나 ‘우승’이 꿈같은 말이 아니다. 더구나 상대가 일본이라지 않는가.

일본은 여자축구 강국 중 하나다. 우리 선수들이 아깝게 진다 해도 부끄러울 것은 없다. 그래도 기자는 즐거운 기대를 품고 중계를 시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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