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형 건국훈장 수여 싸고 과거사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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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두고 과거사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한편에선 또다른 인물을 중심에 둔 과거사 논란이 분분하다.

그 주인공은 해방직후 건국준비위원회와 좌우합작 운동을 주도하다 암살당한 몽양 여운형. 그는 신한청년단과 상해임시정부 등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였지만 사회주의 계열의 인사라는 점에서 그간 정부의 공식적인 서훈 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국가보훈처는 그간 미뤄오던 몽양에 독립유공자 공적심사를 지난달말 합동심을 통해 완료하고 서훈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몽양에게는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수여될 것으로 알려졌으며 서훈은 국무회의와 대통령 재가를 거쳐 오는 3·1절에 이뤄질 예정이다.

문제는 독립유공자에 대한 서훈을 유족들이 거부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몽양 여운형 선생 추모사업회 기획실장이자 몽양의 종손자인 여인호 실장은“몽양 선생의 공적이 뒤늦게나마 공식 인정을 받는 것은 환영하지만 들리는 이야기처럼 2급 서훈이라면 유족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언했다.

추모사업회와 유족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훈격, 즉 훈장의 등급이다. 몽양에게 서훈될 것으로 알려진 대통령장은 최고 훈격(서훈 1급)인 대한민국장의 다음 등급이다.

여 실장은 “몽양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의 초석을 놓았고 식민지시기 가장 암흑기인 1944년 건국동맹을 결성해 국내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해방을 준비하셨던 분”이라며 “기존의 1급 서훈자와 비교해도 결코 위상이나 공적이 뒤떨어지지 않는데 2급 서훈은 객관적인 공적평가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타협의 산물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추모사업회 강준식 사무총장도 “오는 17일 추모사업회 총회를 통해 서훈을 받을 것이냐 거부할 것이냐를 놓고 최종 결정을 할 것”이라면서도 “현재 유족을 포함해 받지 말아야한다는 회원들이 다수인 상황”이라고 밝혀 서훈 거부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같은 반발에 국가보훈처는 난감한 표정이다. 보훈처 관계자는“지금까지 이미 받은 훈장을 반납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경우는 있었지만 서훈 자체를 거부한 일은 한번도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사안의 민감성 때문인지 현재 어떤 상황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심사내용은 물론 심사위원 구성도 알려지지 않았으며 단지 33명의 위원들이 참여했다는 사실만 공개됐을 뿐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관련 보도들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여기에 대응할 경우 공식적으로 보도를 확인해주는 결과밖에 안돼 어떤 해명이나 입장표명도 자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최소한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고 난 뒤에나 발표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족측에서 정부의 결정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서훈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보수단체의 반발이 만만치 않기때문이다. 우익단체인 자유민주민족회의(대표상임의장 이철승)는 최근 몽양에 대한 서훈 결정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통해 “김일성과 내통하면서 사회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여운형을 건국 유공자로 추서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며 자유민주 반역행위”라고 주장했다. 우익인사들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서훈이 대통령의 언급에서 비롯됐고 시기적으로 최근의 과거사 정국과 병행해 가고 있는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이때문에 최근 결성된 교과서포럼에서도 “교과서에 건국 대통령 이승만보다 여운형이 더 많이 언급됐다”는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해방직후 는 물론 지금도 여운형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 셈이다.

목포대 정병준 교수(한국사)는 “몽양에 대한 서훈 결정과 훈격 논란은 현재 한국사회가 포용할 수 있는 이념적 범위와 폭, 그리고 자신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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