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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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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과 한 알이 평생의 배필을 결정짓기도 한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선 처녀가 사과를 창문 밖으로 던지곤 그걸 줍는 총각과 결혼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혹 독신을 서약한 성직자가 그 사과를 줍는다면? 안타깝지만 처녀로 늙어 죽는 것 외엔 도리가 없었단다. ‘묻지마 결혼’치고도 극단적인 경우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짝을 짓는 일은 드물다. 태곳적에도 배우자감을 고르는 기준은 꽤나 깐깐했다. 남자는 신분, 여자는 외모를 통해 종족 번식에 유리한지를 따졌다. 요즘 미인대회 수상자들의 허리와 엉덩이 비율이 하나같이 1:1.3인 것도 ‘다산형 몸매’를 신붓감의 최우선 조건으로 꼽던 석기시대 관습에 뿌리를 뒀다는 게 진화학자들의 주장이다.

현대의 짝짓기 조건은 훨씬 복잡다단하다. 그렇다 보니 이상형을 대신 찾아주는 전문업체들이 성업 중이다. 미국만 해도 온라인 중매 사이트 시장 규모가 무려 10억 달러에 달한다. 최근 이들 사이트의 추세는 과학적 기법으로 성향이 딱 맞는 커플을 맺어주는 거란다.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위해선 외모나 경제력 같은 외적 조건보단 서로 성격이 잘 통하는지가 더 중요하단 판단 때문이다.

유료 회원 120만 명을 둔 매치닷컴의 자회사 케미스트리닷컴이 대표적이다. 인류학자가 개발한 장문의 성격 진단용 설문에 답하게 한 뒤 가장 잘 어울리는 이성과 엮어준다고 한다. 예컨대 직선적인 사람은 이해심 많은 상대에, 반대로 모험가들이나 보수주의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부류에 끌린단다.

얼마 전 국내 결혼정보회사들이 키 1m65㎝ 이하인 남자들의 회원 가입을 거부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 권고를 받았다. 키 작은 남자는 여자들이 싫어해 맞선 성사 가능성이 낮다는 게 업계의 해명이다. 하기야 작은 키뿐 아니라 머리숱 휑한 것도 공공연한 결격 사유로 통해왔다. 그뿐 아니라 학벌·직장·연봉 등 어느 하나라도 처지면 간택을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어차피 첫눈에 불꽃 튀어 하는 결혼이 아니니 다들 조건만 재고 또 잰다. 업체도, 회원들도 미국처럼 결혼의 성공을 가늠해볼 진짜 잣대인 피차의 성격을 맞춰볼 생각은 별로 없는 듯하다. 이래서야 진정한 반쪽을 찾기는커녕 헛돈 쓰고 헛수고하기 십상이다. 차라리 옛날 시칠리아처럼 사과를 던져 배필을 정하면 그나마 돈과 에너지라도 아낄 수 있지 싶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