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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MB 방러, 신뢰향상 계기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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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러 정상은 오는 10월 벨기에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와 11월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개별 회동이 약속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산적한 국정현안을 뒤로 미룬 채 러시아 방문을 결정한 배경은 무엇인가.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때 이번 한·러 정상회담의 의미와 성과를 짚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방러한 표면적 이유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초청으로 야로슬라블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실질적인 목적은 한국의 대(對)러시아 현안들을 감안할 때 다양한 수준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우선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를 둘러싸고 한·러 간에 형성된 미묘한 냉기류의 해소다. 현재 북한의 후계구도와 북핵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싸고 주변국들의 움직임이 숨 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천안함 사건 처리 과정에서 한국과 입장을 달리했던 러시아에 대해 소원한 감정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그 앙금을 제거하는 것이 향후 한반도 및 동북아 세력구도에서 한국의 입지 강화에 유익할 것이라는 청와대의 판단이 깊게 작용한 듯하다.

또 한·러 간 지경학적 연계성이 현저히 증대돼 한국 경제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등장한 러시아에 대한 경제이익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2008년 9월 러시아 방문 때 제시한 한·러 3대 신(新) 실크로드 구상이 그것이다. 이는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한반도종단철도와 연결하는 ‘철의 실크로드’, 시베리아·극동지역 에너지를 개발해 파이프라인으로 한반도와 연결하는 ‘에너지 실크로드’, 한국의 선진 영농기술을 통해 연해주의 조림과 농업혁명을 이루는 ‘녹색 실크로드’로 구성돼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심화하겠다는 의지다. 그동안 양국 간에는 화려한 외교적 수사와는 배치되는 신뢰부족의 문제가 양국관계 발전을 제약해 왔다. 이런 측면에서 집권 이후 두 번째 이루어진 이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은 그 의미가 사뭇 깊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재임 중 러시아를 두 번씩이나 공식 방문해 정상회담을 가진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동북아 4강 외교에서 러시아의 비중을 점차 높여 나갈 것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서울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크렘린의 적극적 협조 확보도 방러 목적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은 이번 천안함 사건 처리 과정이 보여주듯 한·러 관계 발전을 저해하는 북한 요소를 최소화하는 가운데 상호 국익수렴 노력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협력을 내실화하기 위한 것이다. 9월 30일 한·러 수교 20주년에 즈음해 이루어진 러시아 행보가 장기적 관점에서는 한·러 관계 발전의 큰 거보로 기억되고,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러시아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