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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깊이읽기] 중국을 변화시킨 거인 장쩌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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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중국을 변화시킨 거인 장쩌민
원제 The Man Who Changed China
로버트 로렌스 쿤 지음, 박범수 외 옮김
랜덤하우스 중앙, 502쪽, 2만3000원

1997년 9월 미국을 국빈 방문한 장쩌민(江澤民.사진) 중국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는 필라델피아에서 경호원의 제지를 뿌리치고 어디론가로 향했다. 그가 찾은 사람은 구위슈(顧毓琇)라는 이름의 95세 노인. 45년 상하이(上海) 지아퉁(交通)대학에서 그에게 미적분학을 가르친 스승이다. 구 교수의 집에는 '배움을 소중히 여기고 스승을 공경한다'는 내용의 장 주석 자작시를 담은 액자가 걸려 있었다.

이 사례는 93년에서 2004년까지 중국 최고 지도자를 지낸 장쩌민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과학기술을 앞세워 중국의 고도성장을 이끌고, 시를 암송하는 교양인의 이미지로 중국의 국제 이미지를 한층 올린 지도자로서 말이다.

사실 그동안 서방측은 그를 가혹하게 평가해왔다. 89년 천안문(天安門) 사태 때 군대를 동원해 학생시위를 유혈 진압하고 티베트인과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을 탄압한 압제자로 본다.

하지만 이 책은 그가 중국 공산정권의 독재자라는 서방의 시각을 거부한다. 대신 중국 공산정권 최고 권력이 어떻게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을 거쳐 공학도 출신의 그에게 오게 되었는지를 중점적으로 파헤친다. 장쩌민과 중국에 대해 일종의 '내재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일본침략.국공내전.대약진운동.문화혁명.천안문 사건.경제성장 등 중국 현대사의 흐름에 맞춰 그의 삶을 그렸다. 장쩌민의 삶을 파악하는 것이 중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라는 저자의 평소 지론이 잘 드러난다. 고전 시문을 즐기던 공학도가 일제 침략기에 공산주의자가 되고, 수십 년 뒤에는 반대를 무릅쓰고 개인사업자도 공산당에 입당할 수 있게 개조하는 드라마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외교활동에도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장이 9.11테러가 난 바로 그날 미국에 애도를 표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한다는 전문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에게 보낸 첫 외국 지도자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과거 제3 세계의 맹주에 불과했던 중국이 장쩌민 시대에 와서 제1 세계 강대국에 준하는 국제적 지위를 얻었다는 중국 당국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이다.

외신은 이 책에 32쪽에 이르는 흑백 사진이 포함된 것으로 전했으나 번역서에는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미 PBS방송의 '진실에 더 가까이'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중국전문가로 통한다. 중국 정부의 경제.인수합병.과학.미디어 고문을 지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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