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노르웨이 “탈북자 데려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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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노르웨이 이민국 관계자들과 경찰이 북한 출신 망명신청자들이 집단으로 머무는 노르웨이의 한 난민수용소를 급습했다. 그 결과 한국 여권 소지자 33명, 주민등록증 소지자 22명을 적발하고 다른 25명에게선 한국 국적자란 자백을 받았다. 노르웨이 정부는 이들 중 20명에게 임시 여행증명서를 발급해 한국으로 강제 송환하는 한편 이들의 위장망명 신청에 개입한 브로커를 적발했다.’(주 노르웨이 대사관이 외교부 본부에 보낸 2009년 1월 21일자 공문 중에서)

한국 국적을 취득한 탈북자들의 제3국 위장 망명이 늘면서 외교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영국·노르웨이에서만 불법 ‘위장망명’이 적발돼 오도가도 못할 처지가 된 탈북자가 현재 600명에 이른다고 외교부는 추정하고 있다.

국회 외교통상위 홍정욱(한나라당) 의원이 14일 입수한 외교부 내부 문건들에 따르면 영국에서 2004년 이후 탈북 망명신청자가 1000여 명에 이르고, 이 중 70%는 한국 국적자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에 영국 정부가 이미 출국한 100여 명을 뺀 500여 명을 빨리 데려가라고 지난해부터 수차례 한국 정부에 요구해 왔다는 것이다.

영국은 2008년 말까지 375명(인도적 보호 포함)의 탈북자 망명을 수용하다가 지난 해부터 한 명의 망명도 허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200여 명이 망명을 신청한 노르웨이 정부도 위장 망명자를 100명 이상으로 보고 한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고 외교부 측은 밝혔다.

특히 영국의 경우 ‘위장망명’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한국 정부에 북한이탈주민 전원의 지문정보를 넘기라는 조약 체결까지 요구해 외교문제로 비화한 상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가 신청한 ‘영국 청년이동제도’(YMS) 가입이 보류됐고, 일반 방문객의 비자 기각 사례가 늘어나 외교부가 지난 6월 대책회의까지 연 것으로 확인됐다.

홍 의원은 “지난해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법이 강화되면서 정착민이 제3국 망명을 시도한 경우 지원혜택을 박탈하도록 해 귀국도 못하고 국제 미아가 생겼다”며 “더 이상 외교문제가 커지지 않도록 일정 기간 제재를 유예해줘 귀국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의 제3국 위장 망명이 늘어나는 건 한국에서 ‘2등 국민’ 취급을 받는 데 대한 불만이 크기 때문이라고 탈북자들은 밝히고 있다. 2005년 국내에 온 탈북자 김모(38)씨는 “하나원 동기 중 20여 명이 브로커를 통해 영국·노르웨이·캐나다로 갔다”며 “지난해 9월 캐나다로 간 친구는 골프와 야구를 하며 재미있게 살아왔는데, 최근 지문 확인할까 걱정하더라”고 말했다.

이영종·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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