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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억 들인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좌초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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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 랜드마크를 지향하는 ‘한강 예술섬’ 사업(조감도)이 좌초 위기다. 시 의회가 재원 확보 등을 이유로 제동을 걸고 나섰는데 국가 주요 사업이 시 의회 권력이 바뀌었다고 중단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서울시의회는 10일 열린 본회의에서 ‘재단법인 한강 예술섬 설립·운영에 관한 조례 폐지 조례안’을 가결했다. 이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박진형(민주당·강북) 의원은 “예술섬 건립을 위한 안정적인 재원 확보 방안이 마련되지 않아 정상적인 사업 추진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운영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겠다는 것은 논리적 근거가 미약하다”고 폐기 이유를 밝혔다.

예술섬 사업은 서울시가 5865억원을 투입해 용산구 이촌동 노들섬 6만818㎡ 부지에 각종 문화시설을 지어 한국 최고 문화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단지의 대표 건축물인 오페라 하우스는 연면적 9만9102㎡, 지하 2층, 지상 8층 규모다. 여기에 2100석 규모의 콘서트홀과 1700석을 갖춘 오페라극장, 다목적홀, 갤러리 등이 입주한다. 연내에 착공해 2014년 4월 공사가 끝나고 나면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상주하며 콘서트를 열고 오페라·발레·뮤지컬 공연장으로도 활용될 예정이었다. 서울시는 부지 매입, 설계 공모, 맹꽁이 모니터링·이주 비용 등으로 이미 520억원을 사용했다.

그러나 의회의 법인 설립 조례안 폐지로 기업의 후원 등을 유치해 오페라하우스를 운영하려던 서울시의 구상은 실현이 어렵게 됐다. 재단법인을 만들지 못하면 다른 업체에 맡겨 위탁 운영하거나 서울시가 직영해야 하는데 이 경우 후원 유치에 한계가 있다.

서울시는 오페라하우스 건축비로 2700억원의 기금을 별도로 마련했으나 지난해 12월 일반예산으로 돌려 일자리 창출에 썼다. 이를 들어 강희용(민주당·동작) 의원은 “민생을 돌보기에도 넉넉지 않을 정도로 서울시 재정이 어렵다는 증거인데 수천억원을 들여 호화 건축물을 지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사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안승일 서울시 문화국장은 “굳이 기금으로 목돈을 갖고 있지 않아도 서울시의 재정 여건이면 일반 예산으로 편성해도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일반 예산으로 쓴 것”이라며 “서울의 공연 인프라와 국제적 위상을 두루 감안할 때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나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에 버금가는 세계적 문화예술시설의 건립은 꼭 필요하며 야당이 의회를 지배한다고 해서 좌초되거나 지연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사업이 정상적으로 추진될지 여부는 오는 11월 내년 예산을 편성할 때 사업비가 책정되느냐에 달려 있다. 시의회 의석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 민주당이 예산을 축소하면 사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삭감하면 사업은 중단된다. 박진형 의원은 “아직 당론으로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상당수 의원이 부정적인 입장인 것은 사실”이라며 “사업의 필요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예산 심의 때 입장을 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업은 당초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던 2005년 1월 오페라하우스 건립 계획을 확정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2006년 7월 오세훈 시장이 취임해 다양한 공연과 전시 행사를 소화할 수 있는 복합문화단지 조성 사업으로 확대됐다.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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