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공부모임 3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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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인간 사회엔 자애와 법질서가 필요하다. 자애가 부족하면 살기는 삭막해도 사회는 유지된다. 그러나 법질서가 지켜지지 않고 법이 무르면 사회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하얀 눈썹이 인상적인 조순 전 경제부총리의 통찰력과 균형성, 언어감각은 유쾌하다. 지식의 비타민 같다. 그 비타민을 섭취하려면 매주 목요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인간개발 경영자연구회'(회장 장만기, 명예회장 조순)의 조찬 특강에 참석하면 된다.

경영.행정.학문.예술.기술.종교.정치.안보 등 분야에서 초청된 전문가의 특강이 끝나면 조순 전 부총리가 5~10분가량 '클로징 리마크'를 하는데 지혜의 압축미가 그만이다. 법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위의 촌평은 지난달 김승규 법무부 장관이 한 강연에 대한 것이다. 인간개발 경영자연구회는 웬만한 경영인들 사이에서 한국의 명품 공부모임으로 통하고 있다. 이 연구회엔 강사로 초청받은 사람이 거절하기 어려운 권위가 있다. 특강 자체가 대체로 재미나 감동이나 유익함을 준다. 오래된 회원이라고 특별히 누리는 기득권은 없다. 인간경영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개방성도 이 공부모임의 매력이다.

다만 부지런함이 자격조건이다. 30대에서 70대까지의 모임 참석자들은 새벽 공기를 사랑하는 아침형 인간들이다. 이들은 자꾸 물어보고 무언가를 배우려 하는 특성이 있다. 자기가 설정한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다. 때론 엉뚱하다 싶을 정도로 주장이 강하지만 새로운 지식정보나 경험들에 대해선 호기심 가득 찬 눈빛으로 귀를 세운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 끼이면 왠지 활력이 솟고 괜히 기분이 좋다. 개인적인 친소나 세대차, 지역이나 성향의 차이로 공부의 네트워크가 상처 입는 일은 거의 없다.

이 연구회가 3일 1388번째 목요 모임으로 30주년을 맞는다. 모르긴 몰라도 아침 공부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지 않았을까 싶다. 첫 강연이 1975년 2월 5일 목요일이었고 초기엔 월례 모임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30년간 설날이나 추석 주간에도 단 한번 거른 일이 없었다. 이런 일관성과 성실성 뒤엔 '경영의 핵심은 자금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믿는 장만기 회장의 집념이 깔려 있다. 어느덧 한국 사회의 인적 인프라로 성장한 인간개발 경영자연구회에 박수를 보낸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