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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해지기엔 심히 아름다운 삶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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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호 05면

할리우드의 독보적인 코미디 배우 짐 캐리가 우울증에 걸렸단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우울증에 걸린다 해도 이 사람만큼은 명랑할 것 같은 바로 그가 우울증이라니, 역시 사람의 겉과 속은 모르는 일인가 보다. 영화 ‘케이블 가이’ ‘마스크’ 등에서 보여줬던 익살스러운 표정 연기를 기억하는 관객으로서는 그의 슬픈 얼굴을 떠올리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김수경의 시시콜콜 미국문화 - 짐 캐리의 우울증

사연은 간단하다. 그는 5년간 동거했던 여자친구 제니 매카시와 올해 4월 결별했다. 그런데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에게 새 남자친구가 생겼고 최근 동거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남의 슬픔을 두고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 남녀 사이의 이별이 가슴 아픈 거야 당연한 일이니 딱히 흥미로운 가십거리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그렇다고 해서 짐 캐리가 할리우드에서 보기 드물게 순정파냐,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그는 1987년 결혼했지만 94년 자신을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영화 ‘덤 앤 더머’에 함께 출연한 여배우 로렌 홀리와 데이트를 시작했고 이내 첫 부인과 이혼했다. 당시 “무명 시절을 뒷바라지해준 조강지처를 버리고 유명해지자마자 변심했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그의 우울증은 생각보다 뿌리가 깊다. 짐 캐리는 2004년 CBS의 시사프로그램 ‘식스티 미니츠(60 Minutes)’에 출연해 자신이 아주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아왔음을 밝혔다. 그는 우울증 치료제 프로작 없이는 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자신의 ‘몸개그’의 원동력은 “절박함(desperation)”이라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몸이 많이 아팠다. 그가 가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때가 되면 여러 개의 알약을 먹는 모습뿐이었다. 4형제의 막내로 자란 짐 캐리는 그런 어머니의 곁을 지키며 어머니의 기분을 좋아지게 만들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거나 유명인의 흉내를 내곤 했다.

회사 경리로 일하던 아버지마저 젊은 나이에 실직하자 심각한 가난이 찾아왔고 경비원·청소부 등으로 가족이 모두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당시 열여섯 살이었던 짐 캐리 역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업소 무대에서 코미디 공연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당시 그는 세상에 대해 너무나 화가 났다고 한다.

그의 과장된 코미디 연기를 보고 있으면 어딘가 나사 하나쯤 풀린 듯한 미치광이 같았다. 그러나 그의 몸짓 하나하나가 실은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한 가면이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그는 죽음과 가난이라는 엄청난 고통을 싸워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웃겨야 했다. 자신의 슬픔이 혹시라도 들킬까봐 연기는 더욱 과장됐을 것이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더니, 짐 캐리의 유쾌해 보이는 삶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슬픔과 상처투성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자신의 우울증을 솔직하게 세상에 알리고 끊임없이 치료하려 하는 몇 안 되는 연예인 중 하나라는 점이다. 우울증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니 세상 뒤로 숨어 혼자만 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짐 캐리가 우울증으로 술이나 약물에 의존하고 싶을 때 되뇌던 말이 있다고 한다. “인생은 (그런 식으로 허비하기엔) 너무나 아름답다 (Life is too beautiful).” 짐 캐리를 포함해 현재 우울증을 앓고 있는 모든 이들이 이 말을 듣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 그렇다. 삶은 우울해하기엔 ‘심하게’ 아름답다.
sisikolkol@gmail.com



일간지에서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다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유학하며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다. 음악과 문화 등 대중문화 전반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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