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과학] 한국형 6000m급 잠수정 만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타이타닉호 침몰은 해운 사상 가장 비극적인 참사로 기록되고 있다. 침몰된 지 73년 만인 1985년 세상에 다시 그 존재가 알려지게 된 것은 깊은 바다를 탐사할 수 있는 잠수정 기술이 발전한 덕이다. 타이타닉호를 발견한 사람은 미국 우즈홀해양연구소의 로버트 밸러드 박사다. 그는 '아르고'라는 무인 잠수정에 음향탐지기와 카메라를 달아 해저로 내려보냈다. 무인 잠수정은 두껍고 긴 케이블에 매달려 전기를 공급받고, 영상 등 탐색 데이터를 모선과 주고 받았다. 이 잠수정에 의해 타이타닉호는 3810m 깊이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픽크게보기

타이타닉호 발견은 심해 잠수정의 성가를 가장 널리 알린 계기가 됐다. 잠수정은 이제 깊은 바다의 탐험에 필수품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더 깊게 더 다양한 기능을 탑재하려는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다. 우리나라도 이 대열에 뛰어들어 올해 말이면 시험용 잠수정이 완성된다.

세계에서 바닷속에 가장 깊게 들어갈 수 있는 무인 잠수정은 일본 해양과학연구센터의 '가이코'로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수심 1만1000m의 바닷속까지 탐사가 가능하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인 마리아나 해구에도 들여 보낼 수 있다. 그러나 2003년 태평양 해저 탐사 도중 태풍으로 잃어버렸다. 이 정도 깊이까지 들어갈 수 있는 잠수정은 지각판이 충돌하는 해저를 확인하는 등 특수 용도로 제작된다. 보통 아주 깊은 바다라고 해도 6000m까지 들어갈 수 있는 성능이면 전 세계 바다의 98% 정도를 탐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는 '6000m급' 무인 잠수정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미국 우즈홀해양연구소는 90년대 초 6000m급인 '제이슨'과 '메디아'를, 2002년에는 6500m급 '제이슨2'를 개발했다. 프랑스는 97년 6000m급 '빅토르6000'을 만들었다. 일본이 가이코를 건조한 것은 97년이었다.

대부분의 국가가 유인 잠수정보다 무인 잠수정을 개발하려는 것은 컴퓨터와 첨단장비에 힘입어 유인 잠수정의 효과가 무인에 비해 아주 크지 않기 때문이다.

무인 잠수정의 용도는 미개척지인 바닷속을 사람 대신 탐험해야하는 만큼 다양하다. 해저 지질 연구에서부터 섭씨 350도 정도의 뜨거운 물이 솟아나는 열수분출구 주변 생물 탐사, 해저 광물 조사, 해저에 빠뜨린 물건 찾기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해양 생물학자들은 이런 잠수정을 이용해 심해에서 500여종의 새로운 생물을 찾아냈다.2000m 수심의 심해오징어, 1만900m의 마리아나 해구에 서식하는 갑옷바다벼룩 등이 대표적이다. 태평양 등 대양마다 수십 가닥씩 깔려 있는 해저광케이블 수리에도 해저 잠수정과 거기에 달려 있는 로봇이 동원된다.

무인 잠수정은 우주 탐사에 사용하는 기술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첨단기술이 필요하다. 바다라는 특수한 환경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해양연구원 이판묵 박사는 "잠수정보다 훨씬 무거운 케이블이 조류에 휩쓸려도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해야 하고, 600기압 등 초고압의 수압에 견디도록 각종 장비를 방수처리해야 하는 등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한국형 심해 무인 잠수정 개발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하려는 잠수정에 사용하는 케이블의 길이는 8.5㎞이며, 무게는 8.5t에 이른다. 이렇다보니 케이블이 워낙 무거워 잠수정의 스크루로 힘을 써봐야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각종 장비의 방수를 위해 장비 안쪽 기압과 바깥쪽 수압을 동등하게 해 수압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기술도 적용된다. 이는 심해에 사는 물고기들이 살아가는 비결을 이용하는 것이다.무인 잠수정은 해저를 인류에게 더욱 가깝게 만드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