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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 폐지 말라” 서명운동·현수막 … 고시촌 부글부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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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고시제도 폐지하면 개천에서 난 용들은 씨가 마를 게 뻔해요. 특채와 민간인 채용은 결국 현대판 음서제도로 전락할 겁니다.” 사법시험 준비생인 전모(20)씨가 지난 5일 ‘3대 고시 존치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이름의 온라인 카페를 만든 이유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현선(35)씨의 특채 특혜 의혹이 불거진 지 3일 만이었다. 그는 “이번 사건은 고위층 병역비리와 다를 바 없다”며 “고시제 폐지는 결국 권력층의 권력 세습을 도울 것”라고 비판했다. 이 카페는 생긴 지 이틀 만에 800여 명이 가입했다.

‘3대 고시 부활을 위한 토론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7일 서울 대학동 고시촌 거리에 걸렸다. 고시생들이 결성한 ‘3대 고시 존치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내건 이 현수막에는 ‘권력층과 부유층을 위한 고시특채음서제도 폐지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태성 기자]

하루 방문자 수만 4000명이 넘는다. 가입자들은 고시 폐지에 강력 반대했다. “양극화된 한국 사회에서 고시는 마지막 남은 신분 상승의 기회”라는 것이다. 전씨는 이들의 뜻을 모아 11, 12일 서울 관악구 대학동의 고시촌에서 ‘고시제도 부활을 위한 고시생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고시생들은 잘 뭉치지 않는 ‘모래알’로 비유되곤 했다. 하지만 이들이 고시제 폐지에 반발하며 힘을 모으고 있다. 유 장관의 딸이 특혜를 받아 채용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실제로 7일 대학동 고시촌 곳곳에 ‘권력층과 부유층을 위한 고시 특채 폐지하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전씨가 만든 카페 회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제작한 현수막이다. 이들은 고시 폐지 반대 의미를 담은 빨간 리본을 제작·배포해 가방 등에 부착하는 방법도 검토 중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청원게시판에는 지난 3일부터 ‘3대 고시제도 폐지 반대 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다. 7일 오후 현재 2500여 명이 동참했다. 김금동씨는 “지금 현실에서 특채하면 학연·지연·혈연으로 선발할 게 뻔하다. 돈 없고 백 없는 사람들만 피해를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고시제도 폐지 및 축소 결정은 오래전에 결정됐다. 사법시험은 로스쿨 도입이 결정된 2007년 폐지가 확정됐다. 외무고시 역시 올해 초 외교아카데미를 설립키로 하면서 폐지안이 발표됐다. 각각 2017, 2013년에 없어진다. 행정고시도 선발인원을 줄여 2015년까지 전체의 절반을 민간인 전문가로 채용할 계획이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다양한 경험을 갖춘 전문 인력을 뽑겠다는 고시제도 개편에 반대할 명분이 약했지만 장관 딸의 채용 특혜 논란으로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특채 선발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되지 못하면 ‘공정사회’라는 정부의 목표도 유명무실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립여고 교직원 자녀 성적 조작 의혹=서울의 한 사립여고에서는 교내 경시대회에서 교직원 자녀에게 상을 주기 위해 성적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시교육청은 7일 관련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장학사 2명을 파견하는 등 특별조사에 나섰다.

시교육청과 해당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6월 이 학교에서는 수학경시대회가 열렸다. 채점 결과 교무차장의 딸 A양(고3)이 문과반 시험에서 공등 9등으로 입상했다. 그러나 다른 수학교사들이 A양의 답안지를 검토한 결과 정답이 틀리거나 풀이 과정에서 빠진 부분이 있었다. 재채점이 실시됐고 A양은 12등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미 시상을 마친 상태였고 학교 측은 2명의 추가 수상자를 발표했다. 학교 측은 인사위원회를 열어 문제 출제와 채점을 맡은 이모 교사에 대해 구두경고 조치했다.

이에 대해 이 교사는 “재채점 결과로도 A양의 점수가 달라지지 않았다. 특혜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1월 A양이 이 학교로 전학하기 위해 위장전입한 사실이 알려져 어머니인 교무차장이 주의 조치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글=박유미·이한길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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