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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대학을 자유롭게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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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학은 '자유인'을 기르는 곳이다. 고대 이탈리아 볼로냐와 프랑스 파리의 일반학원(Studium Generale)부터 그랬듯이 고등교육기관은 3학(Trivium:문법.논리.수사학)과 4과(Quadrivium:산수.기하.천문학.음악)라는 일곱 가지 자유학예를 가르쳤다. 이를 바탕삼아 신학과 법학 교육에 치중했다. 우리의 문사철(文史哲) 교육이 이에 버금가는 것이다.

고등교육은 본디 현 제도와 체제에 필요한 기능인을 양성하기도 하지만 현 체제를 비판하는 자유인을 기르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지식인의 사회참여 방식이 비판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주도세력이 1970년대와 80년대에 대학에 다니면서 비판과 저항의 중심에 있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대학의 모습과 역할은 자명해진다.

요즘 교육부총리 임명을 계기로 새삼 대학의 사명과 역할에 관한 논의가 분분하다. 임명권자의 요구 중에는 청년실업을 해소해 달라는 것이 있고, 기업의 요구는 현장에서 당장 쓸 수 있는 인력을 대학이 배출해 달라는 것이다. 마치 현장에서 필요한 기능인이 양성되지 않는 것이 청년실업의 한 원인인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그러나 기능인이 양성되지 않는 것이 청년실업의 중요한 원인도 아닐 뿐더러, 대학은 기능인을 양산해 달라는 주문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삼성 인사팀의 어느 조사를 보면 기업 쪽에서는 대학의 전공기초 교육이나 정보화 교육, 그리고 의사소통 능력 교육도 그런대로 만족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더해서 기업은 졸업생들에게 조직 적응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기대한다. 그러려면 학문적 지식과 실천 경험적 지식이 융합돼야 한다. 이처럼 인재 양성은 대학과 기업이 역할분담을 해야 하며, 이 중 대학의 역할은 새로운 경험과 지식에 적응하고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는 기초를 갖춰 주는 것이다. 대학이 자기중심적(ego-centric) 기능인-그것도 5년 후면 재충전해야 할-을 배출한다면 이들이 과연 국가와 사회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따져보면 대학과 교육인적자원부가 기능인 교육을 외면한 것도 아니다. 지난해부터 교육부는 대학의 기업성을 감안하면서 졸업생이 직업현장에 당장 뛰어들 수 있도록 여러 사업을 돕고 있다. 4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시범적으로 27개 대학이 현장실습에 치중하도록 했다. 축산.관광.해양산업.디자인 등등 수 없이 많은 실생활과 직결된 취업교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대학은 기능인보다 자유인을 길러내는 교육에 열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학의 복잡한 행정체계, 거대한 관료조직, 상업주의, 총장과 교수들의 기능주의적 행동양식 등부터 극복해야 한다. 그러면서 (1)분석적 개념화 능력, (2)총체적 상황 파악 능력, (3)복잡성의 명료화 환원 능력, (4)반성적 사고와 정연한 표현 능력, (5)도덕적 판단 능력과 실천 능력, (6)비판적 대안적 사고 능력, (7)새로운 상황 이해와 설명, 그리고 제어 능력, (8)미래 조감 능력 등을 키워 사회에 내놓아야 한다. 이러한 튼튼한 바탕 위에 사회생활에서의 경험적 지혜와 기능이 더해져야 비로소 사회에 제대로 기여할 수 있는 인재가 되는 것이다.

경제인이자 교육 쪽에서 보면 경계인일 수밖에 없는 새 교육부총리가 해야 할 일은 이방인 격인 행정자치부 장관이 기존 관료제를 혁명적으로 잘 개혁하고 있듯이 교육부부터 개혁하는 일이다. 애당초 개혁할 자유조차 없었던 대학을 개혁하기 전에 고식적이며 가부장적 권위의식으로 뭉쳐있는 교육부를 먼저 개혁해 대학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대학이 자유로운 공기를 숨 쉴 수 있어야 나라의 미래가 달라진다.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정부학·한국사회과학연구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