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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문서 자의적 공개'란 있을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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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 1월 17일과 20일 외교통상부는 연례적으로 시행해 오던 '외교문서 공개제도'에 따라 1974년도 문서를 공개했다. 94년부터 시행해 12번째 공개임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공개가 일반 국민 및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고 있는 것은 공개된 문서 중에 국민적인 관심이 큰 한.일 수교협정 관련 문서와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 관련 문서가 포함돼 있었고, 공교롭게도 두 사안의 문서가 동시에 공개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공개된 문서에는 상기 두 문서철 외에 다른 외교문서철도 1000여권이나 포함돼 있었다. 이 가운데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 관련 문서는 30년이 지난 외교문서의 연례적 공개에 따른 것이다.

또 한.일 수교협정 관련 문서는 지난해 2월 서울행정법원의 공개 판결 후 정부 측의 항소로 현재 서울고등법원에 계류 중인 문건 가운데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정부 행정의 투명성 증대 차원에서 그동안 외교부 내 관련 실.국의 협의를 거쳐 재판 결과와 관계없이 이들 문서를 적극적으로 공개키로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런데 이를 놓고 일부 인사들과 언론에서 외교부의 문서 공개가 자의적이라거나, 외교문서의 공개 기준과 원칙이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을 해왔다. 외교문서의 공개 기준과 원칙이 모호하다는 것은 지난 1월 24일 및 1월 28일자 중앙일보 시론과 중앙시평에서도 언급됐는데, 이 같은 지적이나 우려는 외교부의 외교문서 공개 원칙이나 기준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일각에서 일고 있는, 사실과 다른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외교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외교문서의 공개 기준과 방식 등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96년 우리나라에서 '정보공개법'이 제정됐다. 외교부는 이 법이 제정되기도 전인 93년 7월에 '외교문서 보존 및 공개에 관한 규칙'을 부령으로 제정해 생산.접수한 뒤 30년이 경과한 외교문서를 심사.심의해 매년 일반에 공개해 오고 있다. 즉, 국민의 개별적인 공개청구가 있기 전에 30년이 경과한 문서에 대해서는 국민이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즉시 열람할 수 있도록 사전 대비해 놓는 제도다.

외교부가 생산.접수한 뒤 30년이 경과한 외교문서 공개를 위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 우선 30년째 되는 해에 외교문서를 조사.수집.재정리하고 외교부 장관이 임명한 5~7명의 예비 심사위원들이 문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다.

그런 뒤 관련 실.국과 협의를 하고, 필요한 경우 관련 부처 및 관련 국가의 의견 조회를 거쳐 공개. 비공개 여부를 분류하는 사전 심사절차를 거친다.

이후 외교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차관보급 5명과 외부 전문가 1명으로 구성된 '외교문서 공개심의회'에서 공개.비공개 여부를 최종 심의하게 된다. 이러한 외교문서의 심사.심의 절차는 연중 계속된다.

심의 기준은 30년이 경과한 문서는 대부분 공개한다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국가 안전보장과 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거나,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비공개로 할 수 있다.

또 외국 및 국제기구 간 협의 및 교섭에 관련된 사안으로 공개시 외교문제나 국제분쟁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정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공개를 최대화하고 비공개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되도록 하기 위해 비공개 결정을 할 때는 출석한 심의위원 전원의 찬성으로 의결하고, 비공개로 분류된 뒤에도 5년이 경과한 뒤 공개 여부를 재심의하도록 하고 있다.

올해는 74년도 문서 총 1161권에 대한 공개 여부를 심의해 그 중 91.3%인 1060권을 공개했다. 이는 그동안의 연평균 공개율 89.4%보다 높은 비율이다. 알 권리를 최대한 충족시키기 위해 앞으로도 보다 더 적극적인 공개가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할 방침이다.

박흥신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