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침체 허덕이는 원룸시장 돌아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9면

▶ 경기침체에다 공급과잉·성매매특별법 등의 여파로 원룸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사진은 유흥업소 종사자 수요가 감소하며 공실이 늘고 있는 강남구 논현동 원룸촌. 서미숙 기자

"월세를 내놓은 지 두 달째 무소식이네요. 월세수입은 커녕 관리비 손해만 보고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1동에서 원룸임대를 하는 李모(45)씨의 하소연이다. 원룸 10개 중 3개가 비어 있고, 3월이면 또 한 개가 만기다. 李씨는 "마음 같으면 집을 팔고 싶은데 제값받기가 어려울 것 같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경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원룸 시장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성매매 특별법 등의 한파가 겹친 서울 강남권은 물론, 임대시장의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대학가 등에도 예년 이맘때보다 빈 방이 늘고 임대수익률이 하락하고 있다.

2년 전부터 사그라지기 시작한 원룸시장이 올 들어 거의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오피스텔 등 대체 상품 공급도 많은 만큼 경기가 나아질 때까지 투자를 자제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빈방 급증에 '대책 없다'=원룸주택이 모여 있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일대. 방 10개 중 2~3개가 빈 곳이 많다. 집이 낡았거나 집주인이 높은 임대료를 고집하는 곳은 빈 방이 4~5개에 이른다. 지난해 이맘때보다 공실률이 10%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인근 강남구 역삼동 일대는 1년 전 방 15개짜리 원룸의 빈 방이 1~2개에 그쳤지만 지금은 보통 3~4개다. 지은 지 오래된 강남 교보생명 네거리 인근의 서초구 반포1동 원룸 촌의 경우 공실률이 30~40%에 이르는 곳도 있다.

이에 따라 임대료도 지난해보다 많게는 절반까지 곤두박질쳤다. 서초구 반포동은 지난해 상반기 10~12평형 원룸이 보증금 500만원에 월 60만~70만원이었으나 지금은 월 30만~35만원으로 떨어졌다. 강남구 논현.역삼동 역시 보증금 1000만원에 월 70만~80만원이던 것이 현재 역세권이라도 월 50만~60만원에 그친다.

<그래픽 크게보기>

원룸 시장의 침체는 마포구.송파구 등 원룸 공급이 많은 곳은 물론, 비교적 부침이 덜했던 대학촌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 인근인 관악구 봉천동 일대 원룸시장의 경우 보통 1~3월이 신학기 시즌이지만 올해는 공실률이 20% 이상이다. 전세금 기준 지난해 초 5000만원이던 것이 지금은 4000만원으로 20% 하락했다.

봉천7동 월드부동산 이상일 사장은 "신입.재학생 할 것 없이 싼 방만 찾다 보니 기존 원룸들이 세놓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보증금을 100만~200만원의 소액만 걸거나 무보증 월세까지 등장했다"고 말했다.

연세대.이화여대.서강대 등이 있는 신촌 일대도 마찬가지다. 서대문구 창천동 르메르공인중개사 하만정 사장은 "예년 이맘때 보증금 1000만원, 월세 40만원이던 것이 올해는 월 30만원으로 하락했다"며 "시설이 좋은 곳과 나쁜 곳, 여유층과 서민층에 따라 차별화가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 원룸의 공실이 늘어나는 것은 주차장법.건축법 등이 바뀌기 전인 2002~2003년 대거 건축허가를 받아 신축, 공급이 포화 상태에 이른 반면 경기침체로 수요는 감소하기 때문이다.

강남권은 지난해 접대비 실명제와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이 지역 원룸의 주요 고객이던 유흥업소 종사자들의 수요가 줄어든 것도 큰 원인이다.

게다가 오피스텔의 입주물량 증가로 임대료가 떨어지자 이쪽으로 이탈하는 수요도 늘고 있다. 현재 강남 테헤란로 일대 새로 입주했거나 1~2년된 오피스텔 14~17평형(전용 8~12평)짜리 월세가 보증금 500만~1000만원에 월 50만~70만원 선으로 원룸 시세와 비슷하다.

◆수익 급감, 투자 유의해야=전문가들은 신규 투자는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수익률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1년 전 서초구 반포동에서 대지 70평, 건평 230평, 12평형 원룸 20개를 20억원 주고 산 경우 방 1개당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60만원을 받아 투자비 대비 수익률은 연 7.4%였다. 지금은 집값이 15억원으로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월세 수입이 보증금 500만원에 월 30만원으로 감소해 수익률은 연 5%에 그치는 것으로 추산됐다.(표 참조)

게다가 늘어난 공실을 감안하면 수익률은 더 떨어진다. 특히 오는 4월 단독주택 가격공시제도가 시행되면 다가구 원룸 시장은 더 얼어붙을 전망이다. 아파트에 비해 환금성이 떨어지는 데다 세금부담까지 커져 매매거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서초구 서초동 씨티랜드 안시찬 사장은 "지금 원룸은 세금과 중개수수료.감가상각비 등을 감안할 경우 수익률이 은행 이자 수준에도 못 미치는 곳이 많다"며 "내수경기 활성화에 따라 단축될 수 있지만 2~3년은 여유를 두고 투자를 미루는 게 낫다"고 말했다.

서미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