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마저 … CEO 리스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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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격려하면서 도전해 성공신화를 만들자”고 했다. 이백순 신한은행장은 은행 홈페이지에 자신의 경영철학은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이라고 밝혔다. ‘장수와 병사가 뜻을 같이하면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뜻이다. 은행 영업창구 행원부터 최고경영자(CEO)까지 같은 이상과 비전을 갖고 한 몸처럼 움직여 이를 실현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지금, 신한금융그룹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 대신 CEO끼리 불신과 갈등이 춤춘다. 장수와 병사가 뜻을 같이하기는커녕 장수끼리 서로 칼을 겨눈다. 이러니 신한금융의 주가는 지난 2일 4.87% 급락한 데 이어 3일에는 1.93% 더 떨어졌다.

금융회사의 CEO가 오히려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CEO 리스크(CEO 때문에 생긴 위험)’다. 신한금융 사태에서 보듯이 후계구도를 놓고 갈등이 증폭되거나, CEO 선임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는 금융회사의 체질 약화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외압에 흔들리지 않도록 금융회사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CEO 승계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KB금융지주는 전임 회장(황영기)과 행장(강정원)이 투자 손실과 인선 과정에서의 공정성 문제 등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이 결과 한때 국내 1위였던 국민은행이 리딩뱅크에서 밀려났다. 올 1분기 기준으로 국민은행의 1인당 생산성은 2017만원으로 4560만원인 신한은행의 절반도 안 된다.

이번에는 신한금융 차례다. 외국인 주주들은 신한금융 주식을 신 사장 고소 사태가 벌어진 지난 2일부터 2거래일 동안 1310억원어치나 순매도했다. 라응찬 회장은 차명계좌 건으로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신 사장은 횡령과 배임 혐의로 고소당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주요 금융회사들이 CEO 리스크에 시달리는 이유는 지배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주인이 없어 정치권에 휘둘리거나, 후계구도를 놓고 내부갈등이 일어나기 쉬운 구조다.

경영진과 이들의 감시역인 사외이사들 사이에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경영진이나 대주주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인사가 사외이사로 임명돼 거수기 역할을 하곤 한다. 반대로 사외이사들이 권력화하는 경우도 있다.그 때문에 CEO에 대한 공정하고 공평한 내부 관리·감독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CEO 후보군을 미리 양성해 선발하는 후계 프로그램을 금융회사들이 구축하는 것도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도 금융사들이 투명하고 예측가능한 후계 프로그램을 권장하고 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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