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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찍이’ 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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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찍찍이’ 부모

앵무새에겐 말을 곧잘 따라 하는 것 말고도 사람과 닮은 구석이 또 있다. 날갯짓 배우기 무섭게 독립시키는 다른 새들에 비해 새끼의 응석을 오래 받아주는 게 그렇다. 앵무새 새끼는 마치 갓난아기처럼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채 부모가 물어다 주는 먹이로 배를 채운다. 생후 3~4개월이 지나 몸집이 부모만큼 커져도 좀체 나무 위 둥지를 떠나려 들지 않는다. 견디다 못해 부모가 먹이를 반으로 줄여야 마지못해 땅으로 뛰어내려 비행 연습을 한다. 하지만 혼자 먹이를 찾을 수 있게 돼도 새끼는 드러누워 아기 짓을 하기 일쑤다. 마음 약한 앵무새 부모는 차마 못 내치고 네 살이 되도록 다 큰 새끼를 먹여 살린다.

물론 자식에게 봉 노릇 하는 세월로 따지자면 사람 따를 짐승이 없다. 일평생 부모 등골을 빼먹는 자식도 허다하다.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어머니 그레이스도 쉬 철들지 않는 아들 때문에 어지간히 속을 썩었는지 이런 편지를 보냈다. “모든 자식은 도무지 바닥 날 것 같지 않은 은행 계좌를 갖고 세상에 나간단다…10대 무렵이면 하도 무분별하게 찾아 써서 몇 푼 안 남게 되지. 성인이 돼서도 은행이 계속 사랑과 연민을 베풀긴 하지만 이때쯤엔 스스로 계좌를 좀 채워줄 필요가 있단다.”

요즘 부모 중엔 자식을 하도 품에 끼고 돌아 도리어 독립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대학생·직장인이 된 뒤까지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기 예사다. 몇 년 전부터 자녀 주위를 끊임없이 맴도는 이들을 ‘헬리콥터 부모’라 부르더니 최근엔 ‘벨크로(Velcro·찍찍이) 부모’란 신조어마저 등장했다. 자식 곁에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는 이들 때문에 얼마 전 입학 철을 맞은 미국 대학들이 골머리를 앓았다는 소식이다. 모어하우스 칼리지란 곳은 신입생들이 학교 안으로 행진한 뒤 교문을 잠가 부모들과 물리적으로 단절시키는 ‘이별식’을 거행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부처에 딸자식을 특혜 취직시킨 의혹으로 낙마한 장관 역시 찍찍이 부모였지 싶다. 상식적으로 문제가 될 게 뻔한데도 옆에 끼고 있으려 한 것이나 결근 통보를 어머니가 대신했다는 얘기가 나도는 걸 보면 말이다. 과연 진짜 자식을 위한 길이 뭔지 곰곰 따져볼 일이다. 도움이 될 만한 시 한 편 소개한다. ‘광야로/내보낸 자식은/콩나무가 되었고/온실로/들여보낸 자식은/콩나물이 되었고’(정채봉, ‘콩씨네 자녀교육’)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