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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력, 콘텐트 경쟁력 없이 종편 방송 뛰어드는 건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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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 분야에서 50년을 매진했다면 ‘달인’의 칭호를 들을 만하다. 그런 점에서 홍두표(75) JIBS(제주국제자유도시방송) 회장은 한국 방송의 달인이요 산증인이다. 1961년 KBS가 첫 지상파 방송 시작을 알릴 때 그는 창설요원으로 현장에 있었다. 천장 마감도 못해 물이 새는 스튜디오에서 “큐” 사인이 터져 나온 순간을 기억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의 방송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64년엔 첫 민영 TV 동양방송(TBC) 창설에 참여했다. 이후엔 ‘사장이 직업’이라는 별칭을 들을 정도로 미디어 최고경영자(CEO)로 명성을 날렸다. 93년 KBS 사장 취임 뒤 수신료를 전기료에 통합부과하게 해 현 KBS 재정의 기틀을 다진 것도 홍 회장이었다. 홍 회장은 2002년 마지막 지상파 TV인 JIBS를 제주도에서 창설해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다. 이런 그가 3일 ‘방송의 날’을 맞아 한국방송대상 ‘공로상’을 받는다. “한 우물을 집요하게 파고들면 전문가가 되고 기회와 운이 따르는 법”이라는 그를 2일 만나 마르지 않는 도전정신의 원천을 알아봤다. 한국방송 50년도 되돌아봤다. 제37회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은 3일 오후 5시10분부터 KBS-1TV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된다.

- 방송인생 50년, 참 긴 세월이다. 공로상 수상 소감은.

“격동과 변혁, 영욕과 발전으로 점철된 방송 50년 동안 값진 삶을 보내왔다. 반백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방송은 여전히 외경스러운 존재다. 1961년 지상파 방송이 시작될 때 나를 포함해 14명의 동료가 함께했다. 그중 3분의 1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한국 방송의 문을 함께 연 그들과 영광을 나누고 싶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고른다면.

“1980년 11월 30일 동양방송(TBC) 깃발을 내리던 일이다. 많은 이가 기억하듯 TBC는 한국 방송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런데 컬러 TV 시대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문을 닫게 됐다. 마지막 사장으로서 중앙일보 옥상에서 TBC 깃발을 내리던 광경은 두고두고 아픔으로 남아 있다.”

-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일은.

“5·16 군사혁명이 나던 해 공보부 공채 1기로 첫 KBS 전파 발사를 했던 날도 잊을 수 없다. 61년 12월 31일이었다. 그해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군부정권의 지시에 따라 기존요원과 신입요원이 코피를 쏟아가며 방송 준비를 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오후 6시 마침내 “큐” 사인이 울려퍼졌다. 당시 비 새던 스튜디오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KBS 재정을 개선한 일도 경영자로서 기억에 남는다. 수신료 징수율이 50% 이하에서 94% 이상으로 뛰면서 프로그램 질도 함께 높아졌다.”

-‘사장이 직업’이라는 말이 있다.(※그는 KBS와 중앙일보 사장, TBC 사장,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담배인삼공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뛰다보니 중요한 자리를 많이 맡게 됐다. 기회와 운도 따라준 것 같다. 다만 먼저 자리를 탐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땀과 희생은 반드시 보답을 받는다고 믿고 있다. 위기관리에 철저하고 추진력이 강한 CEO라는 평을 듣는데, 그런 사회적 평가가 여러 사장직을 역임한 배경이 되지 않았나 싶다.”

- TBC 창설에 참여하고 마지막 사장을 지냈는데, 당시를 회고한다면?

“TBC는 밝고 따뜻한 이미지로 TV 시대를 선도했다. 3개 방송사 경쟁시대에서도 평균 시청률 43.5%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탁월한 콘텐트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드라마라고 했던 ‘아씨’, 쇼의 대명사 ‘쇼쇼쇼’ 등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혁신적이었다. 현재 40대 중반 이상의 국민들은 오랜 세월 TBC와 함께했고,지금도 강한 향수와 연민을 갖고 있다.”

- 올 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언론 통폐합 조치가 정권 장악을 위한 불법적인 행위였다고 결론내렸다.

“늦었지만 당연한 결론이다. 시대가 바뀌어 미디어법도 개정되고 방송구도도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부당하게 강제 통폐합된 TBC도 제자리에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잘못된 역사, 잘못된 사회정의가 바로잡혀야 역사발전과 국가의 정체성이 제대로 설 수 있다고 믿는다.”

- 지상파 방송은 어디로 가야 하나.

“미디어 융합과 정보기술(IT) 산업의 고도화로 무수한 플랫폼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의 책무를 잊어선 안 된다. 지상파는 보편적 서비스를 지향하는 무료 방송이다. 전기·수도·가스처럼 국민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공공적 기능과 공익적 역할을 해야 한다. 무수한 채널 속의 하나로 전락해선 곤란하다.”

- 지상파 방송이 제 역할을 해 왔다고 생각하나.

“방송, 특히 TV는 무수한 상품의 제작과 유통, 서비스에 관여하는 백화점 같다. 그만큼 복잡하고 말이 많고 힘든 작업이다. 특히 PD와 기자들은 하나하나가 헌법기관처럼 독립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 방송의 가치를 지켜가는 일도 그만큼 힘들어진다. 그래서 공정성 시비에 자주 휘말린다. 방송의 경우 시대상황 속에서 외적 요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범하는 잘못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공정성과 정체성, 효율성을 견지하는 건 방송의 책무이자 명제다. 쉽진 않지만 영원히 안고 가야할 숙명이요 과제다.”

- 홍 회장은 유력 신문사와 방송사 사장을 역임했다. 최근 신문의 방송 진출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데 조언을 해 주신다면?

“올해 말 도입 예정인 종합편성채널은 신문과 방송 결합의 새 모델이 될 것이다. 신문 보도의 다양성이나 심층성이 결합돼 TV 저널리즘도 한 단계 발전될 것이다. 그러나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신문과 방송 경영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규모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번에 종편이 출범하면 최소 5년간의 힘든 경영을 각오해야 한다. KBS·MBC가 공영방송으로 안주할 때 SBS가 출범 초기 ‘모래시계’ 하나로 결정타를 날렸던 상황과는 방송환경이 천지차이다. 탄탄한 자본력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콘텐트 경쟁력이 필수적이다. 정치적 배려만 믿고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 방송 50년 이후의 설계를 묻는다면.

“그동안 사회에서 받은 혜택이 너무 많다. 지금 방송계는 과도기나 다름없다. 디지털 전환, 미디어 융합, 뉴미디어 등장 등 현안이 많다. 방송 전문가로서 무엇이 되든 이 흐름에 기여할 생각이다. 그간 쌓아온 지식과 현장 해결능력, 경험을 후학들과 나누는 일도 하려고 한다. 앞에서 내 직업이 사장이라고 했는데 내 평생 직업은 바로 ‘일’이다. 일하는 것이 내 직업이고, 그 속에서 보람을 찾고 있다.”

글=이상복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홍두표 회장은

▶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 1961년 공보부 공채 1기, KBS TV 창립 요원 

▶ 64년 TBC 창립위원, 도쿄 특파원, 편성국장, 사장 역임 

▶ 81년 한국방송광고공사 창설, 사장 

▶ 92년 중앙일보 사장 

▶ 93년 KBS 사장 

▶ 2002년 JIBS(제주국제자유도시방송) 창설, 회장(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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