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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의 주민등록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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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인간사회에서 신분을 확인하는 일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 이러한 역할을 해주는 것이 신분증이다. 우리나라 신분증 제도는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호구를 명백히 하고 민정의 수를 파악하기 위해 '호패' 제도를 실시한 것이 최초다. 일제시대에 조선인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거주지 등록증'을 발급했으며, 광복 후 '도민증'을 발급했고, 62년 간첩을 색출하기 위해 '주민등록증' 제도가 도입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근래에는 정보기술(IT)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전자주민카드' 도입이 예상되기도 한다.

개미들은 고도로 진화된 사회성 곤충이다. 한집에 수백 내지 수천마리로 구성된 개미집의 질서를 위해서는 신분 확인이 필요하다. 개미들은 다른 종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종이라도 다른 집에서 온 개미를 자기 집에 절대로 들여보내지 않는다. 자기 집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이방 개미들을 날카로운 큰턱으로 사정없이 물어 죽인다. 개미학자들은 이러한 개미의 생태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갖게 됐다. 같은 종의 개미라면 형태적으로 비슷하게 생겼을 뿐 아니라 생물학적 특성이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쉽게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러한 개미의 생태를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시도했다. 풀밭에서 곰개미 집 두 개를 찾은 다음 각각 비닐봉지에 넣어 실험실로 돌아왔다. 수조에 두 개의 인공 섬을 만들고 양 섬 사이에 플라스틱 자로 다리를 놓은 뒤 양 섬에 각각 다른 집에서 가져온 곰개미를 넣어줬다. 양 섬에서 서성거리던 개미들이 차츰 영토를 넓혀가더니 다리 쪽으로 향했다. 다리에서 만난 양 섬의 개미들은 서로가 자기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이들의 싸움은 한쪽 개미들이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고 계속됐다. 양쪽 개미들의 몸에서 나는 미세한 냄새(페로몬)의 차이로 적군임을 감지한 것이다. 처음에는 서너마리의 개미가 싸우더니 나중에는 대량의 개미가 다리로 몰려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번에는 한집에서 가져온 개미들을 양 섬에 갈라놓아 봤다. 시간이 지나자 다리로 이동한 개미들은 더듬이를 서로 마주 대고 비벼대더니 잘 어울리기 시작했다. 자기 가족임을 확인한 것이다. 페로몬은 물질대사에서 생긴 부산물이다. 이들은 이 물질을 재활용해 언어로 또는 주민등록증으로 쓰고 있다. 개미의 큰턱샘과 듀포샘에서 분비된 화학물질들의 혼합비율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이 물질들은 공기의 흐름을 타고 더듬이에 접수되고 감각세포.감각신경.뇌로 전달돼 그 의미를 인식한다.

집이 다르다고 해 같은 종인데도 어떻게 페로몬의 혼합비가 다를 수 있을까. 필자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생각해내고 회심의 미소를 지은 적이 있다. 자동차 접촉사고로 인해 자동차를 새로 도색할 때 흰색이 아니라면 원래의 색깔과 새로 칠한 색깔을 일치시키기 매우 힘들다. 여러 가지 색깔의 페인트를 섞어 새로운 색상을 내다보면 원래 차의 색상과 같아지기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페로몬을 자동차에 새로 칠한 색상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같은 종인데도 다른 집 개미와 같은 혼합비의 페로몬을 만들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에 이것은 가능하다.

개미들은 폐기물로 언어를 개발해 지구상에 개미왕국을 건설했다. 이들은 귀로 듣지 않고 몸으로 듣는 언어를 사용해 가장 진화한 사회성 곤충이 됐다.

요즈음 여야를 막론하고 말이 안 통한다고 서로 상대편 흠집 내기로 시끄럽다. 이들에게 개미의 지혜를 배우라고 권하고 싶다. 막말이 아니라 조용히 몸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1억년을 잘 지내온 놀라운 지혜를.

김병진 원광대 교수.곤충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