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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분단 현장을 가다] 155마일 신비의 생태기행 ⑥ 남북 갈등 새 불씨 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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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하지만 언제부턴가 물길이 댐에 가로막히고 수량도 줄었다. 북한이 물길을 돌리기 위해 이곳저곳 댐을 지었고, 남쪽에서도 북한의 수공(水攻)을 우려해 서둘러 방어용 댐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제 모습을 잃은 강은 오늘도 통일을 염원하며 낮게 흐르고 있다.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경기도 연천군 중면 황산리의 태풍전망대 주변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기도 연천 태풍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북한의 4월5일댐의 모습(점선 안). 네 개의 4월5일댐 중 1호 댐이다. 이보다 상류에 위치한 황강댐에서 많은 물을 한꺼번에 방류하는 상황에 대비해 정부는 6월 말 군남댐을 건설했다.

초병들은 철책선 너머 DMZ를 날카롭게 주시하고 있었다. 올 5월 26일. 이런 긴장감과는 달리 DMZ와 북녘 땅의 낮은 구릉과 벌판에는 제법 초록빛이 돌았다. 서울의 가시거리가 13년 만에 가장 긴 35㎞나 됐다는 이날 DMZ 너머 2㎞ 남짓 떨어진 북한 쪽의 ‘4월5일댐(1호댐)’도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였다.

북한의 콘크리트댐은 구불구불 흐르는 임진강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북한은 2007년을 전후해 임진강 상류에 5개의 댐을 건설했다. 상류로 가면서 4월5일댐 1호와 2호, 황강댐, 4월5일댐 3호와 4호가 있다. 보(洑) 수준인 다른 댐과 달리 황강댐은 저수용량이 3억~4억㎥에 이르는 제법 큰 댐이다. 팔당호(2억4000만㎥)보다 많다.

전망대에서 서쪽으로 2㎞ 정도 떨어진 필승교. 4월5일댐에서 9.6㎞를 흘러온 임진강물이 DMZ를 막 벗어나는 곳이다. 다리 위 초소에서도 초병들은 북녘을 주시하고 있었다. 초병들은 지난해 9월 6일 북한의 갑작스러운 황강댐 방류로 하류에서 야영을 하던 시민 6명이 희생당한 이후 수위 변화를 더욱 꼼꼼히 챙기고 있다. 한 초병은 “필승교 다리 가장자리에 그려진 눈금으로 수위 변화를 확인한다”며 “현재 수위가 2.25m인데 수위가 3, 5, 7m 등에 도달하는 순간 매번 보고를 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자동으로 수위를 측정하는 장비도 설치돼 있다. 이곳의 신호는 한강홍수통제소나 수자원공사, 연천군 등으로 곧바로 전달된다.

군남댐 운영센터 상황실에서 직원들이 임진강 필승교의 수위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취재에 동행한 한국수자원공사 임진강건설단 박우양 차장은 “홍수 때는 필승교 수위가 10m까지 차오르기도 한다”며 “수위가 상승하면 병사들도 알 수 있도록 자동으로 사이렌이 울린다”고 말했다.

필승교를 지난 강물은 다시 남으로 굽이쳐 흘렀다. 필승교에서 10.6㎞ 하류에는 군남댐이 버티고 있었다. 취재 당시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던 군남댐은 6월 말 완공됐다. 북한의 무단 방류로 인한 인명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당초 내년 8월이던 준공 시기를 대폭 앞당긴 것이다. 덕분에 7월 19일과 22일 두 차례 북한의 황강댐 방류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없었다.

수자원공사 정학동 군남공사팀장은 “필승교의 강물이 군남댐까지 도달하는 데는 1시간40분 정도 걸려 군남댐 수문을 닫고 댐 하류의 야영객이나 주민들을 대피시킬 여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수자원공사 박우양 차장은 “황강댐이 자연 재해로 붕괴되는 경우, 혹은 북한 측 방류와 임진강 지류인 한탄강의 홍수가 맞물리면 군남댐으로서도 한계가 있다”며 “남북 공동의 수해방지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공동 사업으로는 홍수 예방용 조림사업, 기상관측 장비와 기술 제공 등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박 차장은 “강이 남북협력의 물꼬를 트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연 많은 평화의 댐=북한 금강산에서 시작해 남으로 흐르는 북한강이 DMZ를 막 벗어나는 지점에는 깊은 협곡이 있다. 협곡에는 오작교라는 이름의 다리가 놓여 있다. 7월 20일 취재팀이 찾은 오작교는 견우와 직녀를 떠올리게 만드는 낭만적인 이름과는 많이 달랐다. 다리와 강 양편에는 가시 철조망이 겹겹으로 쳐져 있었다.

오작교 아래로는 갈색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다. 며칠 전 북한지역에 내린 폭우 때문으로 보였다. 취재팀을 안내한 육군 제21사단 공보장교인 위진 중위는 “홍수가 심할 때에는 협곡 거의 전체가 물에 잠길 만큼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오작교에서 남쪽으로 10여㎞ 떨어진 평화의 댐은 높이 125m, 폭 601m의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이다. 이 댐은 1986년 11월 북한이 북한강 상류에 임남댐(금강산댐)을 짓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건설이 추진됐다. 북한의 수공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서울이 물바다가 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평화의 댐은 89년 80m 높이로 완공됐다. 임남댐과 직선으로 불과 24㎞ 떨어져 있다. 하지만 수공 위협이 과장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동안 버려지다시피 했다.

그러다 2002년 인공위성 사진을 통해 임남댐의 훼손 부위가 발견되면서 붕괴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평화의 댐 2단계 공사를 시작해 2006년 6월 지금의 규모로 완공했다. 평화의 댐은 밑 빠진 독이다. 댐에는 구멍(도수로)이 뚫려 있어 평상시에는 상류에서 흘러내려온 양만큼 그대로 하류로 흘러나간다. 임남댐 붕괴로 일시에 많은 성난 물길이 밀어닥칠 경우에만 물이 갇히도록 돼있다.

하지만 또 하나 문제가 있다. 임남댐에서 나온 물이 평화의 댐이 아닌 동해 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북한이 45㎞의 도수터널을 뚫어 임남댐의 물을 동해안 연변으로 가져가 전력 생산에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수달연구센터 한성용 박사는 “임남댐 수로변경으로 인해 평화의 댐으로 들어오는 북한강의 수량이 74%나 줄어들면서 북한강 생태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남댐=북한 황강댐이 예고 없이 물을 대량 방류하는 상황에 대비해 우리 측이 만든 콘크리트댐이다. 경기도 연천에 있다. 2012년 말 준공 예정이었으나 공기를 앞당겨 2010년 6월 말 가동을 시작했다. 폭 658m, 높이 26m로 저수량은 7200㎥다. 홍수 예방을 위해 수문을 13개나 만들었다. 중앙의 7개 수문은 상하로, 나머지 6개 수문은 회전시켜 여닫는 방식이다.

금강산댐(임남댐)=북한이 전력 생산을 목적으로 북한강 상류에 건설한 댐. 폭 710m, 높이 121.5m의 사력댐으로 저수량은 약 26억2000만㎥로 추정된다. 1986년 10월 공사를 시작해 2000년 1단계 공사(댐 높이 88m)를, 2003년 말 본댐 공사를 완료했다. 2002년 1월 위성사진에서 댐 훼손 부위가 발견되면서 붕괴 우려가 대두하기도 했다.

평화의 댐=북한의 수공(水攻)에 대비한다는 목적으로 강

원도 화천에 암석과 콘크리트로 만든 댐이다. 북한강 하류의 댐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1987년에 시작된 1단계 사업은 폭 414m, 높이 80m로 5억9000만㎥를 저수할 수 있는 규모였다. 이후 금강산댐의 붕괴 우려로 시작된 2단계 공사(2002~2006년)를 통해 폭 601m, 높이 125m에 저수량 26억3000만㎥ 규모로 증축됐다.



특별취재팀 취재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사진 조용철 기자, 동영상 이병구 기자
취재 협조 국방부, 육군본부, 육군 제21·28사단, 한국수자원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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