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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만 차려선 발전 없다, 교수에게 NO라고 말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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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호 06면

35개 팀으로 나뉜 학생들이 21일 오후 2시 포포인츠 호텔 유니손 홀에서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각기 다른 국가와 전공으로 한 팀을 이룬 학생들은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17일 낮 12시30분 뭄바이 포포인츠 호텔 2층 유니손 홀에서 열린 올해 ASC의 첫 강연이 끝나자 학생들이 기다렸다는 듯 제인(Jainendra K Jain)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물리학과 교수 주변으로 몰려 들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초대칭 이론(자연의 모든 입자에는 그 짝인 초대칭 입자가 존재한다는 이론) 강의는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12시30분이 돼서야 끝났지만 학생들은 교수를 놓아주지 않았다. 30여 명의 학생들에게 둘러싸인 교수는 학생들의 질문 하나하나에 정성껏 답을 했다.

노벨상 수상자와 아시아 젊은 과학도들의 만남, 아시안 사이언스 캠프

중국에서 온 잘린송(18·중국 청두고등학교 2학년)과 하유주(22·중국 칭화대 물리학과 3학년) 학생은 질문하기 위해 20여 분을 기다렸다.

<1>아인슈타인 교수로 불렸던 폴리아코프 교수가 화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들어 올린 자신의 홈페이지를 소개하고 있다. <2>올해 ASC 최고 인기 강연자 마츠다이라 교수는 캠프 기간 동안 항상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을 받았다. <3>학생들은 낮에는 강의를 듣고 저녁에는 팀별로 모여 마지막 날 있을 ‘포스터 발표’를 준비했다. 21일 오전 포포인츠 호텔 유니손 홀에 모인 학생들이 팀별 주제 발표 때 사용할 자료를 만들고 있다. 사진=임현욱 기자, ASC 제공

“이론을 실제로 적용해보려고 실험을 하는데 자꾸 실패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인 교수는 “하나만 생각해서는 안 돼요. 필요 없어 보이는 것이나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것도 잘 조합하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어요”라고 답했다.

학생들은 “이렇게 유명한 교수님한테 얼굴을 보면서 질문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아요. 꼭 만나고 싶었는데 정말 신나요”라고 말했다. 결국 제인 교수는 한 시가 다 돼서야 점심을 먹으러 갈 수 있었다. 학생들 질문에 답하느라 밥 먹는 것도 잊었다는 그는 “아주 인상 깊네요. 어린 학생들의 질문 수준이 굉장해요. 예상치 못한 것도 많고요”라며 강의실을 나갔다

올해 ASC에서는 30개의 강의가 개설됐다. 강의는 184명 학생 모두가 함께 듣는 렉처(Lecture)와 40여 명씩 5개 그룹으로 나누어 듣는 캠프(Camp)로 구성됐다. 학생들은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으로 필기를 하거나 녹음기로 녹음을 해가며 강연 내용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강의가 끝난 뒤 ‘질문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수십 명의 학생들이 경쟁하듯 손을 들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아비달(21)은 “솔직히 잘 몰라도 손을 들어요. 노벨상 받은 선생님에게 질문하고 답변을 받아봤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경험이잖아요”라고 말했다.

내년 캠프는 한국서 중앙SUNDAY가 주관
“아인슈타인 교수님 봤니?” “누구? 아~ 유튜브 교수님?”
학생들은 폴리아코프(Martyn Poliakoff ·62·영국 노팅엄대 화학과) 교수를 ‘아인슈타인 교수’ 혹은 ‘유튜브 교수’로 불렀다. 17일 오후 5시30분 레겐자 호텔 에보니홀에서 그의 강의가 시작됐다. 사방으로 뻗친 하얀 머리에 커다란 안경, 축 늘어진 조끼를 입고 손에는 기다란 교편을 들었다. 8개의 원탁에 둘러앉은 50여 명의 학생 사이에서 ‘마법사 같다’는 수군거림이 흘러나왔다.

폴리아코프 교수는 118개의 원소를 설명하는 동영상을 각각 5분 정도 분량으로 만들어 유튜브와 연결된 자신의 홈페이지(www.periodicvideos.com)에 올린다. 2008년 7월 시작한 이후 계속 업데이트해 지금 등록돼 있는 영상이 253개다. 특별 버전을 만들어 올리기도 하는데 지난 베이징 올림픽 때는 메달에서 힌트를 얻어 금·은·동에 관한 실험 비디오를 만들었다. 크리스마스 때는 크리스마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원소가 무엇일까 고민하다 칠면조를 싸는 알루미늄을 생각해 영상을 제작했다. 그의 유튜브 화학 강의는 2010년 5월까지 1100만 번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폴리아코프 교수는 “대부분 사람들은 과학이 어렵고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깨보고 싶어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교수를 비롯해 VJ, 연구원 등 7명이 한 팀으로 노팅엄 대학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에서 지원금을 받아 영상을 제작한다. 그는 “작업이 많아 지쳐있다가도 ‘내가 봤던 어떤 화학 강의보다 좋은 교재다. 덕분에 화학에 관심이 생겼다’ 같은 댓글을 보면 다시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유튜브 스타 ‘아인슈타인 교수’
아시아의 젊은 과학도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즐거워 피곤한 줄 모르겠다는 그는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아시아 학생들은 대부분 아주 예의가 바르다. 그래서인지 아시아 학생들과 얘기해 보면 상대방이 원하는 답만 하려고 한다. 교수가 질문하는 이유는 학생의 생각을 듣고 싶어서인데 그들은 동의만 한다. 이건 큰 장애물이다. 아시아 과학이 발전하려면 이걸 극복해야 한다. 교수한테 ‘노(No)’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올해 ASC 최고의 인기 강사는 싱가포르 국립대학 생물학과 마츠다이라(Paul Thomas Matsudaira·58) 교수였다. 식사를 할 때나 심지어 화장실 앞에서도 학생들은 마츠다이라 교수만 보면 주변으로 모였다. 베이징대 생물학과 2학년 차훙탕(20)은 “생물학과 학생이라면 누구나 보는 Methods in cell biology라는 책을 쓴 교수님이세요. 지금 학교에서 이 책으로 수업 받고 있는데 직접 만나니 너무 떨려요”라고 했다.

학생들에게 지급된 파란색 티셔츠를 함께 입고 강연을 다닌 마츠다이라 교수는 1985년부터 MIT에서 생물학과 교수로 일하다 2008년 싱가포르 국립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싱가포르 정부가 5개의 연구센터(물리화학·의학·지구과학·환경·생명공학)를 대학과 연계해 지정한 뒤 각각 1억 달러(약 1조2000억원)씩 투자해 분야별로 연구·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그중 물리화학 분야의 부책임자로 초빙됐기 때문이다. 그는 “작은 나라가 살 길은 결국 과학 분야의 연구·개발이다. 국가가 우수한 과학자들을 불러 모으려면 과학자들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교수에게 연구에 관한 질문뿐만 아니라 어떻게 과학자가 됐나, 좋은 과학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등 다양한 질문을 했다. 그는 “교수들은 열정 있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꿈이다. 여긴 과학에 흠뻑 빠져있는 학생들이 수백 명 모여 있어 가르치는 나도 신이 난다”며 “과학자들이 연구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고 발굴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런 과학캠프가 중요하고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학생들 발표에 교수들도 깜짝깜짝 놀라
캠프 마지막 날(21일) 오전 9시 포포인츠 호텔 1층 비즈니스 센터 한쪽 책상에선 일본 대표로 참가한 일본 홋카이도 대학 공학부 2학년 이창민(21) 학생이 커다란 전지에 글을 쓰느라 정신없었다. 이씨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대학으로 진학해 이번 ASC에는 일본 대표로 참가했다. 올해 ASC에 참가한 학생들은 4~5명씩 한 조가 돼 과학과 관련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발표를 했다. 주최 측은 같은 나라 학생들이 한 조가 되지 않게 조를 편성했다.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학생들은 매일 저녁 조별로 모여 새벽까지 발표를 준비해 전지에 그리거나 써서 포스터를 만들었다. 폐막식에선 총 35개 팀 중 금상 1팀, 은·동상 2팀씩을 뽑아 상을 줬다.

이창민 학생은 아이즈(대만)·삭시(인도)·첸(중국)·하시모토(일본)와 함께 행사 중에 있었던 잦은 정전을 탄소 나노튜브를 이용해 해결하는 방안에 대한 발표를 준비했다. 또 호텔에서 매일 침대 시트를 가는 것을 보고 물만 뿌려도 세척이 되는 탄소나노 튜브 코팅 시트도 제안했다. 이씨는 “솔직히 이게 실제로 활용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라며 “이거 만들려고 다른 나라 애들하고 작전 짜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라고 말했다. 심사를 맡은 교수들은 학생들의 발표를 보고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혁신적인 생각이다. 흥미롭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번 행사 진행 총책임자인 ASC 자문위원회 인도 대표 치담바람(R. Chidambaram·73)은 “올해 행사는 인도 정부의 과학기술부와 핵에너지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힘들었다”며 “프로그램은 과학과 사회의 만남에 중점을 뒀다. 줄기세포나 원자력처럼 과학 분야에서 중요한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경우가 많다. 미래의 과학자들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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