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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CEO의 한식 만들기 (17) 악사손해보험 사장 프랑스인 기 마르시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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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기 마르시아 사장이 손수 만든 족발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오상민 기자]

“쫄깃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족발을 짭조름한 새우젓에 찍어 상추와 깻잎에 싸먹으면 그 맛은 환상적입니다. 한번 먹으면 절대로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묘한 맛을 지닌 한국의 대표음식이죠.”

기 마르시아(61) 악사(AXA)손해보험 사장은 주한 외국인 사회에서 대표적인 족발 애호가로 꼽힌다. 그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시간을 내 장충동 족발거리에 있는 단골집을 찾는다고 한다.

“족발은 한입 먹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맛있습니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족발에 계속 젓가락이 가는 걸 보면 저는 족발 없이는 못 사는 프랑스인인 것 같습니다.”

마르시아 사장이 족발을 처음 맛본 것은 2007년 그가 현재의 한국 악사손해보험(옛 교보악사자동차보험) 사장으로 갓 부임했을 때다. 집을 미처 구하지 못해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잠시 머물렀는데 한국에 도착한 첫날 짐을 풀고 근처 식당에서 우연히 저녁으로 먹은 것이 족발이었다.

“호텔 앞 거리를 걷는데 고소하고 독특한 냄새가 저를 유혹했습니다. 호기심에 족발을 파는 여러 식당 중 한 곳에 들어가 먹어봤고, 그 맛에 매료돼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족발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이유의 하나는 프랑스에서도 돼지족발을 먹으며 이를 이용한 요리가 다양하게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족발을 맛보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호텔의 이성호 주방장이 준비해온 돼지 앞다리와 뒷다리를 양파·생강·마늘·된장·소주 등의 재료와 함께 삶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요리 만들기에 들어갔다. 이 주방장은 고기의 핏기를 빼기 위해 삶기 전 찬물에 족발을 3시간 동안 담가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족발을 삶는 동안 마르시아 사장이 “앞다리와 뒷다리의 맛의 차이가 무엇인지” “돼지 족발은 어디서 구입하는지” 등을 궁금해 하자 이 주방장은 “앞다리는 운동량이 많아 물렁뼈가 발달해 퍽퍽한 뒷다리보다 맛이 더 쫄깃쫄깃하다”며 “마장동이나 근처 정육점에 가면 쉽게 구입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전반적으로 족발은 저열량·웰빙 음식이고 피부미용에 좋은 콜라겐과 임산부의 모유를 촉진하는 효소가 들어있다”고 설명했다.

불순물을 빼기 위해 30분 동안 끓인 족발을 꺼내 기름기를 제거한 뒤 마르시아 사장은 이 주방장의 도움을 받아 물을 넣은 커다란 솥에 양파·대파·통계피·감초·커피 원두·코카콜라·물엿·된장 등을 넣고 2시간 동안 삶았다. 마르시아 사장은 “들어가는 재료가 너무 많아 헷갈린다”면서도 “나중에 집에서 혼자 만들기 위해 오늘 열심히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마르시아 사장은 독특한 경력을 지녔다. 그는 1970년대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대학에서 생화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몽펠리에 대학에서 산업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다국적 제약사인 사노피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91년 일본사노피제약 대표로 부임했다. 보험업계에 처음 발을 내디딘 건 98년 일본악사손해보험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다.

한식세계화와 관련, 마르시아 사장은 “한국 음식을 널리 알리려면 맛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외 한식당의 위생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조언했다.그는 “한식당 근무 인력의 현지화도 중요하다” 고 말했다.

마침내 족발이 다 익자 마르시아 사장은 뼈에 붙어있는 고기를 맨손으로 섬세하게 발라 얇게 썬 뒤 상추와 깻잎이 얹어진 접시 위에 곱게 모양을 내 담았다. 요리가 완성되자 그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시원한 막걸리 한 잔과 함께 맛봤다. 혼자서 족발 4인분은 거뜬히 먹는다는 마르시아 사장은 “조만간 마장동에서 고기를 구입해 집에서 혼자 만들어 보겠다”고 말했다.

글=이은주 중앙데일리 기자
사진=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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