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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콜 신화’ 주역 이기태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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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26일 오전 지식경제부를 방문한 이기태(사진) 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얼굴은 다소 상기돼 있었다. 그는 2000년대 세계시장을 휩쓴 ‘애니콜 신화’의 주역이지만, 이날은 연세대 교수 신분이었다. 하루 전 지식경제부가 추진하는 ‘정보기술(IT) 명품인재 육성’ 사업자로 선정된 연세대의 준비상황과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에 나온 것이다.

그가 교수로 변신한 것은 지난달. 연세대가 인천 송도 국제캠퍼스에 신설하는 글로벌융합공합부의 1호 교수로 영입됐다. 그가 박사 학위를 지닌 건 아니다. 학사 학위 소지자지만 총장급 대우를 받는다. 과 소속 미래융합기술연구소의 운영에 전권을 행사하는 파격적인 조건이다. 그는 교수직 제안을 수락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회사경영은 기술이 기반인데, 기술은 인재가 만들고 인재는 교육이 좌우한다. (글로벌융합공학부가) 통섭형 인재를 만들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혁신적인 연구기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캠퍼스에 둥지를 틀자마자 이 교수는 이름값을 했다. 서울대·고려대·KAIST·포스텍 등 국내 최고 수준의 공대들이 도전장을 낸 ‘IT 명품인재 육성’ 사업자로 연세대가 선정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그는 기업에 몸담았던 시절 구축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내 기업들로부터 연구비 지원 약속을 이끌어냈다. 기업 지원은 이번 사업 평가에서 기초 조건이었다.

또 사업계획을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맡아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경부 담당자들은 “경쟁이 너무 심해 공정성 논란을 우려했는데 이 교수 영입과 전권 위임 등의 혁신성에서 연세대가 점수를 많이 땄다”며 “프레젠테이션도 압도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도 특유의 의욕을 보였다. “똑같은 시스템에선 똑같은 사람밖에 안 나올 테니 교육과 인센티브 시스템을 파격적으로 바꾸겠다. 거기에 돈이 필요하다면 정부 청사에 와서 드러눕기라도 하겠다.”

글로벌융합공학부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 그는 “시장에서 필요한 기술과 상품들을 학교에서 시뮬레이션하고, 기술은 제품과 연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런 기술이 뒷받침된다면 학생들은 동물적 감각이 발달될 테고, 그들이 결국 기술 선도국가로서의 일익을 담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로 다루고 싶은 기술로 에너지·환경 분야에서는 물과 공기, 바이오·의료는 노화방지 기술, IT에선 ‘스마트 이후 기술’을 꼽았다. 그는 ‘IT 명품인재 육성’ 사업의 벤치마킹 대상인 미 MIT 미디어렙을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움직이는 방식에 대해선 잘 안다고 했다. 하지만 “그대로 답습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성과는 미디어렙을 지향하지만 한국식 모델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화제가 ‘아이폰 쇼크’로 흐르자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따지고 보면 ‘한국판 스티브 잡스를 키워보자’는 이번 사업의 아이디어도 한국이 스마트폰 경쟁에서 애플의 아이폰에 밀리기 시작한 데서 출발했다. 이에 대해 그는 이내 “자각증세를 알고도 병을 못 고치는 사람은 없다”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을 돌렸다. 이어 “IT의 사이클이 떨어지는 기미를 알아챈 상황에선 기업들이 엄청난 투자와 노력으로 만회하려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현철·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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