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忍冬酒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으니 결코 서두르지 말라".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가 숨을 거두기 전에 남긴 유언 가운데 하나다. 상황이 무르익기를 기다려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대기만성형 인물다운 표현이다. 그는 소년시절 무려 13년 동안의 인질생활도 이겨냈다. 지금의 도쿄(東京)에 중앙정부격인 에도(江戶) 막부와 지방정부에 해당하는 번(藩)의 통치 시스템을 만든 그가 75세 때까지 고단위의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건강 덕이었다. 17세기 당시에 꽤 드물게 장수를 누렸던 그의 건강비결은 무엇일까. 두명의 정실과 15명의 측실을 두고 11남 5녀를 얻은 그의 정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에야스는 지금의 시즈오카(靜岡) 현 하마마쓰에 살고 있을 때 끼니마다 보리밥을 먹고 매 사냥으로 건강관리에 전념했다. 일본의 옛술 연구가들은 그가 오랫동안 특별히 양조해 마신 인동주(忍冬酒)의 자양강장 성분에 주목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13세기께부터 산야와 구릉지 주변에서 자라는 인동초의 꽃과 잎, 뿌리 등으로 술을 빚어왔으며 이에야스가 본거지를 하마마쓰로 옮기면서 이 술이 진상품으로 만들어졌다. 몇해 전 이에 관한 자료가 발견돼 '이에야스가 사랑했던 장수주(長壽酒)'인 인동주가 부활하면서 최근 애주가들의 입맛을 다시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겨우살이 덩굴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인동초는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봄에 다시 새 순을 내기 때문에 인내와 끈기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돼 왔다. 한때는 이 풀이름이 군사정권 때 고난의 시절을 보냈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가리키는 시대어로 쓰였다. 몇년 전부터 부여에서 인동초를 재배하는 특화사업이 벌어지더니 최근에는 이를 말려 찹쌀 고두밥과 누룩을 섞어 제조한 인동주가 탄생하고 이의 주문량도 늘어나고 있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가 예부터 인동초의 집단 자생지로 알려졌으며 백제 장신구 등에도 같은 문양이 등장한 것을 보면 인동초를 둘러싼 한·일 고대사의 또 다른 수수께끼가 있음직하다.

가는 해를 아쉬워하며 쓸쓸하게 연말을 보내는 사람, 올 한해의 비운을 한탄하며 술 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 생활 주변 곳곳에 있는 인동초 문양은 그 질긴 생명력과 시들지 않는 지조를 떠올린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올 것이다.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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