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무기 개발 수순 돌입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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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이 핵 문제와 관련해 사실상 한계선(Red Line)을 넘어섰다.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방사화학실험실(핵 재처리시설)의 재가동을 선언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원을 추방키로 한 것이다.

이에 맞서 미국과 IAEA가 강경 카드를 빼들 가능성이 커 북한 핵 위기는 더 고조되고, 남북 관계도 얼어붙을 전망이다.

정부가 북한의 이 결정 발표 직후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연 뒤 엄중 경고성명을 낸 것은 그만큼 사안이 중대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앞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거나, 방사화학실험실 가동에 들어가면 한반도 정세는 한층 급박하게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의미=북한이 방사화학실험실 재가동을 선언한 것은 "핵무기 개발로 나갈 수 있다"고 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IAEA에 보낸 서한에서 이 실험실의 가동이 사용후 핵연료봉을 보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 분석이다.

북한이 과거 이 실험실에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은 이 실험실 가동에 상당 시간이 걸릴 것임을 내비치기는 했지만, 일단 재가동 준비를 완료해도 대화를 통한 북한 핵 문제 해결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북한의 IAEA 사찰단원 추방 결정으로 IAEA의 북한 핵 활동 감시 체제는 완전히 무너졌다. 북한의 핵시설 봉인 제거와 감시카메라 작동 불능 조치로 핵 감시장치가 작동하지 않게 된 데 이어 마지막 남은 사찰단원의 육안 감시도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앞으로 사용후 핵연료봉을 방사화학실험실로 옮겨 플루토늄을 추출해도 이를 감시할 수 없게 됐다.

북한의 사찰단원 추방 결정은 NPT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뜻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93년 NPT를 탈퇴한 뒤 이에 잔류키로 결정하면서 맺게 된 IAEA와의 핵안전조치협정을 사문화시켰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개발 제동 장치인 북·미 제네바 합의와 북한-IAEA 간 핵안전조치협정이 모두 사실상 파국에 이른 셈이다.

◇배경=북한의 이번 결정은 핵무기 개발 의도를 내비치면서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강하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의 이번 결정은 IAEA를 배제하고 미국과 담판을 하기 위해 위기를 한단계 올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핵 게임'을 단순화하기 위해 취한 조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전력 생산과 거리가 먼 방사화학실험실 재가동을 결정한 만큼 실제 핵무기 개발 수순에 들어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 문제에 매달려 손을 쓸 수 없을 때 핵무기를 개발해 놓겠다는 의도가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전망=북한의 향후 예상되는 조치는 방사화학실험실 재가동 돌입과 NPT 탈퇴다. 북한은 미국이 끝내 협상 테이블로 나오지 않으면 이 실험실의 재가동에 들어갈 수 있다는 분석들이다. 미국은 북한이 실험실 재가동에 들어가면 평화적 해결 노력을 접을지도 모른다.

북한은 또 IAEA가 다음달 이사회에서 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로 회부하면 보복조치로 NPT를 탈퇴할 수도 있다.

북한의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93년 NPT 탈퇴 조치를 취한 결과 미국이 북한과의 회담에 응한 적이 있다고 최근 밝혀 NPT 재탈퇴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오영환 기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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