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국새 비리 의혹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대한민국의 표징(表徵)인 국새(國璽)가 비리 의혹에 휘말렸다. 주조 과정에서 전통 방식을 따르지 않았고, 예산으로 구입한 순금의 상당량이 빼돌려졌으며, 이 금으로 만든 도장이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용으로 건네졌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헌법개정 공포문의 전면, 국가공무원의 임명장뿐만 아니라 외교문서에 날인되는 국가의 얼굴에 흠이 가다니 창피스럽기 짝이 없다. 국새의 제작과 관리를 책임진 행정안전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현재 사용되고 있는 국새는 2007년에 제작됐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현대 방식으로 1999년 제작한 제3대 국새의 인면(印面)에 자주 균열이 생겨 전통 방식으로 다시 제작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예산 1억9000만원에 순금 3㎏이 투입된 국새가 실제로는 전통 가마가 아닌 800만원짜리 현대 가마에서 제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국새제작단장인 민홍규씨는 “경남 산청의 전통 대왕가마에서 구웠다”고 했지만, 단원이었던 이창수씨는 “경기도 이천의 현대 가마에서 작업했다”고 주장했다. 국새의 제작 경위는 대통령령으로 반드시 기록하도록 돼 있지만 민씨가 “600년 비전(秘傳)을 알려줄 수 없다”고 해 누락된 상태라고 한다.

금 도장 로비도 해괴하다. 국새를 제작하고 남은 금 947g으로 도장 16개를 만들어 13개를 정동영 당시 대선 후보와 행안부 공무원 등에게 건네고, 3개는 일반인에 모두 6500만원을 받고 팔았다는 것이다. 이 도장은 ‘국새를 만든 금’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크다. 정 의원은 당시 “놋쇠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지만, 정말 어떤 성격의 도장인지 몰랐는지, 무슨 명목으로 받았는지 밝혀야 한다. 최양식 전 행안부 차관은 “50만원 정도 사례를 했다”고 하지만, 일반인에게 판 가격은 개당 2200만원 꼴이다. 대가로 보기엔 턱없이 적은 액수다.

정부 수립 후 제1대 국새는 도난, 제3대는 균열, 제4대는 비리 얼룩이다. 경찰은 철저히 수사해 국새 제작 과정의 횡령과 사기는 물론 로비 의혹까지 말끔히 밝혀야 한다. 정부는 이런 국새를 계속 사용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