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核 군사적 대응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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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이 영변 핵시설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봉인을 사실상 모두 제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핵 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 간 긴장 수위가 심각한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23일 "미국은 이라크와 북한을 상대로 동시에 두개의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말해 군사적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당장 군사적 대응을 염두에 둔 발언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표명해온 '평화적 해결 원칙'이 바뀔 수 있음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북한은 지난 10월 초 농축 우라늄 핵개발 계획을 시인한 데 이어 영변 핵시설 재가동 선언→IAEA의 봉인 제거 등 계속해서 미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이에 대해 미국은 핵개발 중단 요구→대화중단 선언→중국·러시아를 통한 압력 강화 등 외교적으로 맞서 왔다.

문제는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북 결의안 채택을 제외하고는 미국 입장에서 뾰족한 카드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반면 북한은 IAEA 사찰관 추방→재처리 시설 재가동→플루토늄 추출→핵폭탄 확보는 물론 대륙간 탄도탄 발사 위협, 소규모 군사 충돌 유도 등 '벼랑 끝 전술'을 위해 사용할 카드가 무궁무진하다.

"결국 북한과의 협상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미 의회를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미 부시 행정부는 '나쁜 행동에는 보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만일 북한과의 협상에 나설 경우 부시 대통령은 체면을 잃는 것은 물론 국내외적으로 "김정일(金正日)에게 굴복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미국 평화연구소(USIP)는 이와 관련, 23일 '북핵사태:미국의 정책 선택'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현상유지▶협상▶군사적 수단 동원이라는 세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현상유지 정책은 미국이 기존 입장을 고수, 북한이 먼저 핵개발 계획을 폐기하기 전에는 북한과의 협상에 일절 응하지 않고 사태를 관망하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은 한국·일본·중국 등을 통해 북핵 문제를 간접적으로 다룰 수 있다. 협상 정책은 미국이 북한과 핵문제에 국한된 제한적 협상이나 정치·경제적 사안을 포함한 포괄적 협상을 통해 핵문제를 풀어가는 것이다. 이 방안은 핵문제를 풀 가능성은 크지만 미국은 체면을 구길 수 있다.

군사적 수단을 동원한다면 안보리 등을 통해 대북 경제봉쇄 조치를 취하는 한편 북한의 외교적 고립을 가속화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한반도에 제2의 한국전 발발 가능성과 함께 미국과 한국·일본의 동맹관계나 중국·러시아와의 관계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이 보고서는 지적했다.

워싱턴의 북한 전문가들은 "긴장 고조는 한편으로 협상의 필요성을 의미하기도 한다"면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적절한 명분을 갖추는 선에서 제한적 협상을 벌여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하고 있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joon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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