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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자 김정은의 ‘프로파간다 트위터’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1987년 여름의 기억이다. 연세대생 이한열군이 최루탄을 맞아 사망한 뒤 민주화 열기는 뜨거워져 갔다. 이한열군의 장례식이 열린 7월 9일. 서울 신촌의 연세대에서 진혼식을 마친 시민·학생들의 행렬이 노제가 열리는 시청앞 광장으로 끝없이 이어졌고 그 속에 나도 있었다. 거리에 차들은 없었고, 사람들의 구호 소리만 푸른 하늘로 흩어졌다. 일행과 흩어져 아현 고가도로 위를 지날 때 나즈막하고도 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조선 민중들의 열화와 같은 반독재 함성이…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떨쳐 일어나는….” 쪽진 머리에 짧은 한복의 여성, 캐주얼 양복 차림의 남성이 녹음기로 보이는 기계를 입에 대고 쉬지 않고 ‘중계방송’하듯 얘기하고 있었다. 북한 방송에서 들어본 억양과 어휘들…. ‘부부’란 느낌으로 다가온 이들 60대의 두 사람은 떨어져 걷다가 다시 함께 걷기를 반복하다 인파속에 사라졌다. 기분이 묘했다. 친구 몇 명에게 본 걸 얘기했고, 서로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지나쳤다.

아현동 고가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기억 창고에서 떠오른 것은 최근 북한의 트위터 개설이 이슈가 되면서다.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터넷 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지난 12일부터 트위터(@uriminzok)를 운영하고 있다. 19일엔 ‘하나’라는 사용자 이름의 페이스북도 열었다. 한국 정부에 대한 원색 비난은 기본이다. “남조선 각 계층 단체들과 인민들이 통일 인사 한상렬 목사를 부당하게 탄압하려는 괴뢰패당의 기도를 단호히 저지 파탄시키리라 믿는다” 같은 선동이 주를 이룬다.

방송통신위원회가 트위터 차단에 나섰지만 애플리케이션 형태로 트위터를 이용하면 열리고, 해외 이용자가 리트위트(퍼나르기)하면 그만이다. 하루 1000건 이상의 팔로어가 추가로 붙는다. 북한 주민들의 인터넷 사용은 허용하지 않는 북한 당국이 남한 시민들, 특히 트위터를 사용하는 젊은 층을 상대로 프로파간다를 하겠다는 것이다.

트위터 프로파간다는 북한의 권력 세습과 관련이 있다. 다음 달 당 대표자대회에서 후계자로 공식화할 것으로 보이는 28세의 청년, 김정은의 새로운 대남 교란 방식이다. 김정은은 10대 때 스위스에서 유학했다는 정도만 알려졌을 뿐 외부세계엔 미지의 인물이다. 김정은의 세습이 확실해지자 미국 등이 그의 기질 파악에 나선 모양이다. 고위 정부 관계자는 “중국과 러시아 쪽 정보에 따르면 김정은의 성격이 급하고, 거칠다고 한다. 그래서 주변국들이 좀 우려스러워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김정은의 작품이란 분석도 나왔었다. 탈북 단체들은 김정은이 해킹을 통한 대남 사이버전을 선호한다고 한다. ‘얼리 어답터’일 수도 있겠다. 권력 이양기, 김정은의 공격적 기질은 사이버전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그들이 희망을 갖고 공격적 프로파간다를 전개할 토양을 갖고 있다. 정부의 천안함 조사 발표를 믿지 않는 이들이 30%를 넘고, 소위 ‘진보연대’를 이끌고 있다는 한상렬씨가 3대 세습 독재체제로 들어가 찬양가를 부르자 멀쩡한 지식인들이 한씨를 통일운동가라고 부르는 부조리가 자라고 있지 않은가.

김수정 외교안보부문 차장 su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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