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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학살을 피하고자했던 한 유대인 피아니스트의 피맺힌 선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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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살기 위해, 단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신의 부모와 동족을 죽인 적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해야 했던 남자-. '차이나타운'으로 명성을 날린 감독 로만 폴란스키(69)의 '피아니스트'는 한 유대인 피아니스트의 기막힌 생존담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강제거주구역 게토(Ghetto). 이곳에서 수 차례의 폭탄 세례를 겪으며, 또 상상을 초월하는 배고픔과 절망을 이겨내며 1939년부터 45년까지 6년이라는 세월을 버틴 사내가 있었다. 그 이름은 블라디슬로프 스필만.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누리던 피아니스트였던 스필만은 방송국에서 쇼팽의 녹턴을 연주하던 중 폴란드가 나치의 군홧발에 짓밟히면서 길고 긴 피란길에 오르게 된다.

종전 후 그의 기구한 삶을 담은 회고록이 출간되자 역시 폴란드계 유대인인 폴란스키 감독은 즉각 영화화에 착수한다. 올 칸 국제영화제에서 '피아니스트'는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이 영화가 고발하는 홀로코스트의 현장은 수많은 영화와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몸을 움찔거릴 만큼 충격적이다. 곳곳에서 묘사되는 나치 군인들의 행각은 야만 그 자체다. 무작위로 사람을 골라내 머리에 총을 겨누고 휠체어 탄 노인을 발코니에서 떨어뜨리는 등 유대인들을 짐승 이하로 취급한다. 게토의 삶은 기구하다거나 안타깝다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조차 무엄하게 느껴질 정도다.

유대인들은 나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자기 애를 목졸라 죽인 여자를 화제로 올리며 "(나치에게 빌붙어)기생충이 되거나 아니면 죽거나" 할 수밖에 없다고 절망한다. 인간이 인간일 수 없는 곳, 다시 말해 인간의 존엄이 사라진 살육의 현장을 스필만은 도리 없이 지켜볼 뿐이다. 숨막히는 도피의 순간에도 그는 가끔 조심스레 피아노 건반을 눌러보지만 그의 하얗고 긴 손가락은 무력하기만 하다.

영화의 백미는 숨어지내던 스필만이 나치 장교에게 발각돼 그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대목이다. 말 그대로 살기 위해 피아노를 치지만 그가 건반 앞에 앉는 순간 두 사람의 관계는 역전된다. 그가 인간성이 사라진 '야수의 시간'을 고혹적인 선율로 가득 채우는 순간, 장교의 본성에 숨어있던 '인간'은 다시 살아난다. 이 영화가 단순한 '나치 고발성' 영화에서 가슴을 건드리는 수작으로 발돋움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다만 스필만이라는 인물이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진 점은 '옥에 티' 이상이다. 가족들이 온통 강제수용소로 끌려가는 와중에 운좋게 살아남았지만 가족의 안부를 걱정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든지, 독일 장교가 벗어준 코트를 러시아군 앞에 버젓이 입고 나타난다든지(아무리 추워도!)하는 무신경은 영화의 재미를 떨어뜨리는 게 사실이다.

'안네의 일기'를 연상시키는 스필만의 은신처 생활이 좀더 부각됐으면 긴 상영시간(2시간 28분)의 지루함도 가시고 피아노 연주 장면의 감흥도 한층 더했을 듯하다. 애드리언 브로디 주연. '쉰들러 리스트'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프로덕션 디자이너 알란 스타스키가 동유럽의 회색빛 폐허를 실감나게 구현했다. 지난 20일 개봉한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와는 다른 작품이다. 1월 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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