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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편의 우선 인권은 뒷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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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수사기관의 편의만 앞서고 정작 피의자 인권은 후퇴했다. "

법무부가 22일 발표한 형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 변호사단체와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법무부는 "이번 개정안은 피의자 인권을 보장하고 형벌권을 적절히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며 "공청회 개최, 입법예고를 거쳐 내년 2월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한변호사협회·참여연대 등은 "피의자 인권은 온데간데없고 수사권만 강화한 개악"이라며 "공청회 과정에서 강력히 반대하겠다"고 말했다.

개정안에는 법원이 모든 구속 피의자에 대해 직권으로 국선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도록 하고, 수사기관에서 장기 구속됐다가 무혐의·무죄로 석방됐을 때 구금에 대한 보상은 물론 변호사 비용까지 물어주는 내용 등이 들어 있다.

하지만 법무부와 대한변협 등은 ▶신문 과정에서 변호인 입회를 제한하고▶뇌물·마약·조폭 등 3대 중대 범죄의 구속기간을 6개월까지 연장하며▶참고인 강제 구인제와 사법방해죄를 신설하는 내용 등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변호인 참여권 제한=법무부는 피의자 신문 과정에 변호인 입회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만 체포·구속 후 48시간 이내나 증거 인멸·공범 도주 등의 우려가 있을 경우 이를 제한할 방침이다.

하지만 대한변협의 하창우 공보이사는 "변호인의 도움이 가장 절실한 시점이 체포 직후 48시간 동안이다. 이때 변호인 입회를 제한하는 것은 피의자의 헌법상 권리를 박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증거 인멸이나 공범 도주 등의 우려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이 주관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구속기간 6개월 연장=법무부는 "뇌물·마약·조폭 범죄의 경우 사건 관련자들이 서로 입을 다물어 단서 포착이나 결정적인 증거 수집이 어렵다"면서 "수사가 길어질 수밖에 없어 구속 기간 연장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법원이 최소 1개월마다 구속 필요성을 심사해 인권침해 시비를 차단한다는 입장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전제일 간사는 "법원은 현재도 검찰 요구대로 구속기간을 20일로 연장해주고 있다. 법원이 구속기간을 통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참고인 강제구인제·사법방해죄 신설=참고인 강제구인제는 수사기관이 범죄 수사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실을 안다고 명백히 인정되는 참고인이 2회 이상 소환에 불응할 경우 법원에서 구인장을 발부받아 신병을 확보한다는 내용이다.

사법방해죄는 참고인이 수사기관에 출석해 허위 진술을 하거나 법원에 허위 자료를 제출하는 등 수사·재판을 방해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겠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선수 사무총장은 "검사가 수사 방향에 맞지 않는 진술을 하는 참고인에게 사법방해죄의 처벌 규정을 근거로 자신의 의도대로 진술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참고인 강제구인제 역시 사건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수사 편의상 수사기관에 붙들려가게 돼 결국 인권을 후퇴시킬 것"이라고 반박했다.

장정훈·김승현 기자

cc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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