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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즐겨 읽기] '제비꽃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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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비꽃 편지

권오분 글, 오병훈 그림

도솔, 240쪽, 9500원

꽃을 좋아하는 권오분씨는 별명이 죄다 꽃과 이어져 있다. 아이에게 젖 먹이는 것도 잊고 퉁퉁 불은 젖으로 들판을 다녀서 '들꽃 전도사'요, 식물연구회 산행 때 5분씩 지각을 해 이름 그대로 '오분씨'이다. 몇 십년을 꽃에 미쳐 살았지만 요즘도 꽃을 보러 갈 때면 가슴이 떨린다는 그에게 꽃은 삶의 처음이요 끝이라 할 수 있다.

오분씨가 결혼식 꽃다발(부케)로 손수 만들었을 만큼 좋아하는 제비꽃에 얹은 쉰한 통의 편지는 사람과 어우러진 꽃 이야기다. 20여 년 병원을 드나든 시어머니에게 봄이면 꽃을, 꽃이 지면 잎을, 가을엔 단풍을 물어 날랐던 까닭은 그이의 삶에 대한 의욕을 자극시켜 차도가 있었으면 하는 욕심 때문이었다. 해마다 오월이면 시어머니의 친구 분들을 모시고 '찔레꽃 잔치'를 벌이는 그에게 어르신들은 말한다. "뭐니 뭐니 해도 늙은이들은 얘기꽃이 제일이야. 불러줘서 고마워."

잎과 꽃이 평생 만나지 못하면서도 그리워한다고 해서 이름 붙은 상사화처럼 꽃의 애틋한 사연을 떠올릴 때면 그리움 투성이인 인간사를 되새긴다. 쇠경불알.개불알풀.괴불주머니.노루오줌.쥐똥나무.쇠무릎.며느리밑씻개 같은 재미있는 식물 이름을 부르며 마음의 우울을 밀어낸다.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돈이 있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들도 있다. 그중에 하나가 들꽃을 자연 상태대로 소유할 수 없는 일이다." 그의 편지를 읽어가노라면 책 속에 들꽃 하나가 피어오르는 듯 마음이 말개진다. "쓸모없는 풀이란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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