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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백 든 남자들 백화점에 男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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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지난 8월 개점한 현대백화점 목동점은 남성정장과 전자제품 매장을 지하 2층에 꾸몄다. 기존 백화점들이 대부분 남성복·전자제품 매장을 지상 5∼6층에 두는 것에 비하면 여간 큰 파격이 아니다. 보통 지하층에는 식품관, 1층에는 화장품과 명품매장, 2층에는 여성복 매장을 두는 것이 지금까지 백화점 매장구성의 '공식'이었다. 가깝고 접근하기 좋은 층은 백화점의 주요 고객인 여성들의 몫이었던 셈이다. 목동점에서 지하 2층은 주차장과 가장 가까워 승용차를 몰고 오는 고객들이 쇼핑하기에 좋은 로열층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의 경우에도 지하 2층에는 막스마라·미쏘니 등 여성용 수입의류를 취급하는 매장이 위치해 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개점 전에 지하층을 어떤 매장으로 꾸밀지 고민이 많았다"며 "남성쇼핑객이 증가하는 등 쇼핑문화가 여성 중심에서 점차 가족 중심으로 변화하는 최근의 추세를 감안해 매장 배치를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신규점포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목동점의 남성정장 매출은 개점 이후 넉달 동안 1백71억원에 달해 압구정 본점 실적(1백85억원)에 비해 별로 손색이 없었다.

직접 쇼핑에 나서는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상품 구입에 관한 의사결정을 직접 하는 소비 주체로 '남성 파워'가 급속히 커지는 양상이다. 현대백화점의 집계에 따르면 전체 매출에서 남성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2년 전 34.8%에서 올 하반기 39.4%로 크게 늘었다.신세계 백화점의 경우에도 22.4%에서 26.7%로 비슷한 증가 추세를 보였다.

◇남성파워 확대=결혼 2년차인 조용원(32·호텔 근무)씨는 주말이면 부인과 함께 쇼핑에 나선다. 하지만 자신이 쓸 제품은 자신이 직접 고른다.

조씨는 "결혼 전에 유학 생활을 하면서 쇼핑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며 "무엇보다 내 스타일은 부인보다 내가 더 잘 알기 때문에 옷은 물론 향수나 전자제품도 직접 고르는 편"이라고 말했다.

젊은층 사이에 결혼 연령이 늦춰지고 개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결혼 전에는 어머니가, 결혼 후에는 부인이 사주는 옷을 입는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주5일 근무제 실시도 남성들을 '쇼핑전선'에 나서게 하는 요인이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2년 전에는 주말 매출이 주중 매출보다 1.7배 많았지만 올해는 1.9배로 격차가 커졌다. 남성 고객이 주말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져 40대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1.4% 가량 늘었다.

신세계 관계자는 "혼자 쓰는 싱글 침구류의 경우 주중에는 여성 고객이 대부분이지만 주말에는 남성 고객이 더 많다"며 "이 때문에 때가 잘 안타 남성들이 선호하는 짙은색 침구류를 크게 늘렸다"고 말했다.

소비 주도권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자제품. 주력 제품이 컬러TV·세탁기·냉장고 등 단순 가전에서 PDP·홈시어터·PDA·캠코더 등 디지털 정보통신 제품으로 옮겨가면서 남성이 부상하는 현상이 급속히 나타나고 있다.

테크노마트에서 디지털 캠코더 매장을 운영하는 안경진씨는 "점심시간을 이용하거나 퇴근 후에 직접 매장을 찾는 남성 직장인들이 크게 늘었다"며 "부부가 같이 물건을 사러 나오는 경우에도 제품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상대적으로 많은 남성들이 구매 결정권을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현대백화점 목동점이 남성정장과 전자제품을 같은 층에 배치한 것도 시너지 효과를 보기 위한 것이다. 고가품들이라 주부 혼자 구매를 결정하기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품목들이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동반한 남편과 정장을 산 뒤 전자제품과 가구도 사는 교차구매율이 다른 백화점보다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마케팅도 변한다=유통업체도 발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남성용 매장을 속속 입점시키는가 하면, 남성들을 위한 편의시설·서비스도 확대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올들어 제냐·랑방·폴 스튜어트 등 남성용 명품 브랜드 다섯 개를 차례로 입점시켰다. 이에 비해 새로 입점한 여성용 명품 브랜드는 단 하나뿐이다.

할인점들도 서적코너에 경영·리더십 관련 서적을 대거 비치하는 등 남성고객 잡기에 나서고 있다. 이마트 은평·가양점 등은 자녀를 동반한 남성고객을 위해 남성 화장실에도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했다.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관계자는 "최근 자동차 용품 담당직원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 차량 관련지식이 풍부한 남성고객을 모시는 서비스에 어려움이 없도록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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