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테러 배후 캐내다 참혹한 희생:피랍후 살해된 美 펄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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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내 이름은 대니얼 펄, 유대계 미국인이다. 시온주의자(유대 민족주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유대인이다. 우리 가족은 여러 번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지난 2월 22일 화면에 모습을 드러낸 펄(38)기자의 떨리는 음성은 채 3분도 이어지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스파이임을 자백하라"는 납치범들의 강요로 내뱉은 그의 말은 중간에 뚝 끊겼다. 말하는 도중 납치범들이 예리한 흉기로 그의 목을 내리쳤기 때문이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살해 장면을 담은 비디오테이프가 파키스탄 주재 미국 영사관을 통해 가족들에게 전해진 지 며칠 후 펄의 찢겨진 시신은 카라치의 공동묘지에서 발견됐다. 미국 유력지 월스트리트 저널의 남아시아 지국장으로 취재 도중 '파키스탄 주권회복 민족운동'이란 이슬람 무장단체 납치범들에게 납치된 지 4주일 만이었다.

펄 기자의 비극은 9·11테러 이후 미국이 이슬람 테러조직과의 전쟁에 들어가면서 잉태됐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취재하다 사망한 서방 기자만 8명. 1985년 미 스탠퍼드대를 졸업하고 90년 월스트리트 저널에 입사해 취재경력 12년째였던 펄 역시 '테러와의 전쟁' 한쪽에서 '진실'을 캐려고 노력하다 희생됐다.

펄은 올해 초 신발 속에 폭발물을 감추고 파리발 마이애미행 여객기를 폭파시키려 했던 미국인 탈레반 리처드 리드의 배후를 추적하기 위해 인도 뭄바이에서 파키스탄으로 갔다. 리드와 관련된 파키스탄의 이슬람 지도자 세이크 길라니와 인터뷰하러 약속장소를 찾아간 펄 기자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두차례에 걸쳐 머리에 총구가 겨눠진 채 손이 묶여 있는 사진과 "펄 기자는 이스라엘 첩자다. 그를 살리려면 미국이 관타나모 기지에 구금한 알 카에다 전사들을 즉각 석방하라"는 요구 조건이 담긴 e-메일이 월스트리트 저널 본사로 보내졌을 뿐이다.

비디오테이프로 펄 기자의 사망이 확인되면서 전세계 언론은 들끓었다. 납치와 처형 과정에서 드러난 테러단체의 야만성에 치를 떨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우리는 뛰어난 동료이자 인간적 시선과 예리한 필체를 지닌 훌륭한 기자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이슬람세계를 서방에 설명하는 데 애써온 기자를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로부터 9개월여가 지난 지금 세상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의 죽음 이후에도 테러는 정의란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공격 준비를 서두르면서 이슬람의 분노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펄 기자의 아내 마리안은 지난 5월 아빠를 꼭 빼닮은 아들 아담을 순산했다. 마리안은 "아담의 탄생을 통해 남편이 기사를 통해 밝히려 했던 세상의 기쁨과 사랑, 인간애는 이어질 것"이라고 기뻐했다. 펄 기자의 아버지 주디아 펄 역시 "진실을 좇기 위해 취재 현장에 몸을 던지는 기자들이 있는 한 아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강홍준 기자 kang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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