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下) 단기처방 남발:"투기 잡는다" 새 규제만 30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5면

'재건축 대상 낡은 아파트→신규 아파트 청약→상가·토지→오피스텔·주상복합아파트…'.

올 한해 저금리 체제로 풍부해진 시중 여윳돈이 부동산 시장에서 이리저리 옮겨 갈 때마다 해당 상품은 크게 요동을 치며 가격이 급등했다. 마땅한 투자상품이 없는 현실에서 단기차익이 생길 만하면 돈이 집중되게 마련이다.

국내 부동산 시장이 비정상적인 구조인 것만은 분명하다.

주택공사 주택연구소 김용순 박사는 "한꺼번에 큰 돈을 챙기려는 심리는 부동산 값이 꾸준히 오르기만 하는 우리나라만의 특성"이라며 "정부는 한탕주의만 탓하지 말고 건전한 투자 행태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게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풀었다가 다시 묶는 주택정책을 되풀이함으로써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져 부동산의 미래가치를 점칠 수 없기 때문에 자연히 단기투자 상품에 돈이 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H건설의 한 임원은 "최근 1∼2년 동안 진행된 전 국민의 떴다방화는 정책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어떤 부동산 정책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돈이 될 만한 물건이 있으면 누가 덤벼들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결국 실수요자가 가져가야 할 몫을 가수요가 챙기게 됨으로써 부동산 시장이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부동산 개발업체인 현우I&D 장석이 대표는 "이런 식의 투자 행태는 있는 계층(투자자)과 없는 계층(내 집 마련 희망자)간의 괴리를 더 크게 해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며 "한탕주의식 부동산 투자는 건전한 시장경제 흐름에 분명한 방해 요소"라고 말했다.

부동산 정책이 가장 먼저 달라져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정책의 일관성은 시급한 과제다. 올해만 해도 부동산 과열을 식히기 위한 정부 대책만 20여 차례 나왔고 부동산 세제 개편까지 포함하면 30여건의 규제책이 쏟아졌다. 모두 외환위기 직후에 풀었던 규제를 다시 묶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문제는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을 경우 규제완화 정책으로 슬그머니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메리츠증권 오용헌 부동산금융팀장은 "내년 부동산 시장이 침체할 경우 경기를 살리기 위해 투기과열지구 지정 등의 각종 규제책을 다시 풀 가능성도 있다"며 "투자자들이 정부 정책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하나경제연구소 곽영훈 거시경제팀장은 "청약제도를 비롯한 주택정책을 경기조절용으로 쓰다 보니 냉탕과 온탕을 반복해 일관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주택정책이 경기 흐름에 지나치게 휩쓸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주택업체들도 여윳돈이 건전한 투자시장으로 흐를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줘야 한다. 이익은 적더라도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투자자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상품개발이 시급하다.

미래D&C 유진열 이사는 "한탕주의식 상품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부동산 시장이 안정을 찾으려면 장기 투자상품이 많아 나와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정책의 안정성이 시급하다"고 했다. 신영에셋 김상태 상무는 "이익은 적지만 투자자에게 안정적으로 이익을 챙겨주는 상품이 자리잡기 힘든 토양"이라며 "결국 정책의 일관성, 금리의 안정성, 균형적인 성장, 시장의 투명성 등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내집마련정보사 강현구 팀장은 "대표적인 장기상품으로 관심을 모았던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가 현재 외면받고 있다"며 "장기상품이 외면받는 것은 업체들이 '한 건'에만 치우쳐 상품을 공급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엑스하우징 김신조 대표는 "장기 투자상품이 자리잡으려면 금리가 지금보다 더 내려가야 한다"고 전제하고 "그렇게 되면 금리보다 수익률이 더 좋은 부동산 상품이 자연스럽게 많이 나와 건전한 투자시장이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원갑·안장원 기자

wkpar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