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9남매 보금자리에 온정 밀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 전남 화순군 동면 9남매집을 새롭게 단장한 우미건설 직원들이 가족들과 함께 손을 흔들고 있다. 양광삼 기자

지난 16일 오후 전남 화순군 동면 언동마을 유현희(19.고2)양의 집.

이 집안의 일곱째인 여섯살짜리 광식이와 네살바기 은지는 새로 생긴 세면장이 신기한 듯 계속 문을 들락거렸다.

"집이 따뜻하고 생활하기 편리해져 좋아요. 아저씨들한테도 고맙고…. 청소를 잘 해 깨끗하게 살 게요."

말수가 적은 둘째 연경(17.고2)양도 모처럼 스스로 말문을 열었다.

이웃들의 따뜻한 사랑이 홀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사는 3~19살짜리 9남매의 엄동설한 추위를 녹여 주고 있다.

아파트 건설업체인 우미건설(회장 이광래)은 지난 10일부터 1주일간 매일 직원 3~6명을 보내 15평 크기의 유양 집 곳곳을 대대적으로 고쳐 줬다.

비가 새는 낡은 스레이트 지붕은 기와 모양의 함석으로 다시 이었다. 큰 비가 오면 골짜기 물이 덮치던 건물 뒤편과 옆쪽에는 배수로를 내 사고 위험을 없앴다. 틈 사이로 '황소 바람'이 들던 나무 현관문과 창문들은 이중 섀시로 바꾸고, 세면장은 집 안에서 드나들 수 있게 개조했다. 장판.벽지.전등.주방 조리대도 바꾸고 건물 칠을 다시 한 결과, 춥고 불편했던 집이 아늑하고 편리해졌다.

이 회사 박병규(41) 사후관리팀장은 "건물은 생활에 큰 불편은 없을 만큼 고쳐 놓았다"며 "아이들이 건강하지 못한 어머니를 대신할 후견인을 만나 문제없이 잘 자라기 바란다"고 말했다.

유양네 2남 7녀는 지난 15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화순읍내에 나가 '새로운 경험'을 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고 중국요리집에서 식사를 한 뒤, 목욕탕에서 몸도 씻었다.

남매 대부분이 난생 처음 또는 수년 만에 목욕탕에 가고 자장면을 먹었다.

9남매의 딱한 사정이 처음 보도(본지 지난해 12월 22일자 14면.일부 지역 제외)된 뒤 온정의 손길이 줄을 이었다. 그 결과 이 집의 1.5평 크기 창고는 쌀 포대와 김치통, 라면.김.과일 상자 등으로 꽉 채워졌다.

많게는 100만원, 적게는 3만원씩 그 동안 들어온 성금이 400여만원에 달한다.

화순군 동면사무소 박금호(35)씨는 "자신의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큰 돈을 보내는가 하면 멀리서 시골까지 찾아와 선물 등을 놓고 가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서 새삼 우리 사회가 아직은 밝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유양 집은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어 가족을 먹여 살리던 아버지가 지난해 3월 폐렴으로 숨진 뒤 어머니(39) 혼자 2남 7녀를 기르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가 건강이 나빠 자녀들을 거의 돌보지 못하는 바람에 모두 10식구가 국민기초생활 보장 수급 대상자에게 지급되는 월 84만원으로 빠듯하게 생계를 꾸려 왔다.

이해석 기자<lhsaa@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yks2330@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