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제2 核위기 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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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003년 한반도는 제2의 북핵 위기사태를 맞아야 하는가. 지금 북한은 1994년 클린턴 미국 행정부가 북한의 핵시설을 제거하기 위해 행사하려 했던 '정밀폭격'을 부시 행정부가 다시 추진토록 유도하려는 의도인가. 그런 위기사태가 한반도에 다시 조성된다면 북한은 물론이고 한국도 위험한 지경에 빠진다. 우리는 북한의 무모한 도박에 의해 엉뚱하게, 그리고 자동적으로 나라와 민족이 존망지추(存亡之秋)에 휩쓸려 들어가서는 결코 안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북한이 잇따라 내놓은 조처는 그런 위기의 도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북한이 핵시설 재가동 선언에 이어 어제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핵동결 조처의 해제를 통보했다. 이는 북한이 칼을 한번 빼든 이상 갈 데까지 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최강수의 협박이자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는 의도가 어디에 있든 그 근저에는 미국을 상대로 남쪽의 5천만 동포를 볼모삼아 자기 뜻을 관철하겠다는 얘기에 다름아니다.

북한이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에 이어 94년 영변 원자로의 핵연료봉 교체계획을 밝혀 대미 압박을 가했을 때, 유화적이었던 클린턴 행정부마저 북한의 화근덩어리(영변 핵시설)를 외과수술 하듯 불시의 정밀폭격으로 들어내는 작전을 시행 일보 전까지 추진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폭격에서 증명됐듯 미국은 지금도 충분히 그럴 능력과 의지가 있다는 점을 북한은 인식해야 한다.

북한은 미국을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남쪽의 5천만 민족을 볼모로 미국과 벼랑끝 전선을 벌이려 해선 안된다. 클린턴 행정부에 먹혀든 그들 특유의 이 벼랑끝 전술이 부시 대통령의 미국 행정부와, 곧 들어설 한국의 신정부에도 효험이 있으리라 판단해선 안된다.

94년 클린턴 정부 시절과 지금의 미국 사정은 명백히 다르다. 국제테러의 참담한 피해를 본 부시 행정부는 국제테러의 근절과,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의 저지에 최우선의 가치를 둔 정부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위협엔 유인책을 쓰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협상도 없다고 천명했다. 더욱이 북한에 우호적인 중국과 러시아마저 북한의 핵 개발엔 반대하고 있다. 북한이 핵 가동을 강행할 경우 한반도엔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수밖에 없다.

한반도가 전쟁일보 전까지 갈 경우 한국에 진출·투자한 외국의 기업과 자금이 썰물처럼 빠진다. 말끝마다 민족 우선을 강조하는 북한이 자기들을 도울 수 있는 남쪽이 순식간에 공황상태에 빠지는 것을 노리는 것인가. 그런 북한의 도박은 성공할 수 없다. 미국이 협상에 나올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북한이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한국도 평화적 해결방안을 미국에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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