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정치판 風霜 겪은 7선 의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황낙주(黃珞周) 전 국회의장이 12일 새벽 타계했다. 74세. 8대 국회에 등원해 11대 국회를 제외하곤 일곱번 내리 국회의원을 지냈다.

1930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마산상고와 서울대 경제과를 졸업했고, 일본 와세다대 대학원 정치과를 수료했다.

그의 사회 경력은 육영사업으로 시작됐다. 55년 20대의 나이에 진해여중고를 설립, 교장에 취임한 것이다. 그러다 71년 신민당 공천으로 진해·창원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야당의 길을 걸어왔으며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것은 79년 10대 국회에서 신민당 원내총무를 맡으면서다. 그래서 김영삼 전 대통령 등 그를 오랫동안 가까이 해온 사람들에게는 '황총무'로 통한다.

작은 체구임에도 목소리가 크고 리듬감이 있는 대중연설에 능해 중요한 야당집회 때 단골연사였다.

그는 역술·풍수지리 등에 많은 관심을 가져 비행기를 탈 때도 단골 역술인에게 전화를 해보고 나서야 타는 것으로 유명했다. 국회의장 시절에는 한강과 직각으로 책상을 두면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의장실 집기 배치를 바꾸기도 했다. 다정다감한 면도 있어 외국 방문 등을 하고 나면 넥타이 같은 것을 뭉텅이로 사와 주변에 나누어주곤 했으며 박종률 전 민주당 사무총장 등과는 수십년간 두터운 교분을 유지해 왔다. 사무실에 수십권씩의 한·일 서적을 쌓아두고 틈나는 대로 읽었다.

그러나 95, 96년 두차례에 걸쳐 채용 청탁과 함께 8천만원과 호텔 헬스클럽 회원권(2천만원 상당)을, 92년 승진 청탁과 함께 1천만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되기도 했다.

줄곧 YS맨이었다가 97년 문민정부 마감과 함께 당시 이회창 후보를 적극 지원했고, 최근까지 중요한 정치 현안에 대해 조언을 해왔다.

김교준 기자

kjo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