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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스타들 "스타일 구기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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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면

"캐스팅에 들어갈 때마다 고민되는 부분이죠. 왕년의 톱스타들은 연기력도 받쳐주고 감독의 의도를 기막히게 알아차리니까 같이 일하기는 쉽죠. 하지만 대중의 취향을 생각한다면 좀 꺼려지는 부분이 있어요."

정통 멜로 드라마를 준비 중인 한 드라마 PD는 여자 연기자 섭외의 고민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드라마를 '작품'으로 본다면 당연히 오랫동안 연기를 해온 농익은 배우가 캐스팅 1순위지만, 시청률을 생각한다면 젊고 예쁜 배우가 낫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올해의 TV 드라마 성적표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올해는 유난히도 여자 연기자들의 TV 컴백이 많았다. 최진실·채시라·하희라·김혜수·김미숙 등. 모두 거물급이다.

결혼이다, 출산이다, 또는 영화 쪽에 눈을 돌렸던 이들이 다시 TV로 속속 돌아오면서 제작진과 시청자들 모두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대박을 바랐던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초라한 시청률이었다.

◇아줌마가 웬 처녀 행세?=지난 6월 시작된 KBS 일일극 '당신 옆이 좋아'는 방영 초 시청자 홈페이지에 비난의 글이 빗발쳤다. 30대 연기자들이 10대 연기를 하다보니 너무 어색하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아이 둘을 키우다 4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하희라의 교복 차림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KBS '태양인 이제마'로 2년 만에 돌아온 유호정 역시 젊은 처자 역할이 어색했다는 평을 받았다.

'질투''사랑을 그대 품안에''그대 그리고 나' 등을 통해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잡았던 최진실도 출산 후 출연한 야심작 MBC '그대를 알고부터'에서 참담할 정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20대의 풋풋한 옌볜 처녀의 이미지는 남의 옷을 입은 듯 거북스러웠다.

최고의 연기자에 초라한 시청률.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일선 PD들은 "아직 특정한 이미지를 보여주기엔 어설픈 나이"라고 입을 모은다. 젊은 연기자는 젊은이가 좋아하고 중년 연기자들은 중년이 좋아하게 마련인데 30대 중반인 이들에겐 어떤 역할을 맡겨도 어중간하다는 것이다. 40대 연기자인 이미숙이나 양금석이 든든하게 자신의 입지를 굳힌 것과는 대조적이다.

◇극중에 몰입하지 못하는 시청자들=한 드라마 PD는 "한국에서는 배우를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로 보지 않고 그 사람 자체로 본다"고 토로했다. 최진실은 야구선수의 아내로, 하희라는 두 아이의 엄마로 보는 식이다. 연기자들이 아무리 농익은 연기를 한들 그들을 바라보는 이면에는 반드시 사생활이 끼어든다는 것. 그러다 보니 드라마는 자연 흡인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배우로 활약하다 오랜만에 KBS '장희빈'으로 TV에 돌아온 김혜수도 과거엔 사극 '사모곡' 등에 출연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이후 섹시한 이미지가 주가 되면서 사극에서조차 그녀의 섹시한 면모를 좇는다는 것이다.

MBC '맹가네 전성시대'에서 20대 후반의 이혼녀 역할을 하는 채시라도 마찬가지. 평소에 잉꼬부부로 소문난 그녀가 이혼녀 역할을 하는 데 시청자들은 거부 반응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왕년의 스타들 이대로 주저앉나=정통 멜로 드라마는 이들에겐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연기력이 기본이 돼야 하고 세월의 연륜에서 쌓인 원숙미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달 6일 시작하는 KBS 월·화 드라마 '아내'에는 수년간 CF로만 모습을 드러냈던 김희애가 출연해 벌써부터 화제다. 김희애는 실종된 남편이 다른 여자와 결혼한 사실을 알고 괴로워하는 아내를 연기한다. 오랜만에 TV에 돌아온 동료 스타 연기자들의 참패라는 징크스를 그녀가 깰 수 있을지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박지영 기자

naz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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