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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차명계좌’ 수사로 불똥 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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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무현재단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족 측이 18일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를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고소했다. 조 후보자의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과 관련해서다.

이번 사건의 법률 대리인을 맡은 문재인(사진)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조 후보자의 발언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며 “발언 근거를 명백히 제시할 수 없다면 형사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형법상 명예훼손죄(307조)는 사실을 말할 경우와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경우 처벌의 경중이 다를 뿐 적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308조)은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경우로만 국한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핵심은 조 후보자가 밝힌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다. 그 때문에 검찰이 지난해 수사하다 내사종결했던 노 전 대통령 사건의 수사 자료를 다시 들춰내 검토하는 작업이 불가피해졌다. 대검에 보관돼 있는 당시 계좌 추적 자료를 포함한 수사 파일이 새로운 ‘판도라의 상자’로 변모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본격적인 수사 놓고 엇갈린 입장=검찰 내에서는 지난해 노 전 대통령 사망 이후 검찰에 쏟아졌던 비난과 내부의 충격을 감안할 때 재조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고소·고발 사건이 접수됐다고 굳이 지난해 사건을 다시 꺼내 조사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미 조 후보자가 “인터넷에서 본 내용일 뿐”이라며 한발 뺐기 때문에 당시 사건을 재조사하지 않아도 허위로 드러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조 후보자의 위법 여부를 밝히기 위해선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번 사건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조 후보자를 무혐의 처분하든 기소하든 해야 하는데 실체적 진실 확인도 없이 처벌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이번 파문과 관련해 특검 도입을 제안한 점에 비춰볼 때 명예훼손 수사와는 별도로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보유 여부에 대한 재조사가 이뤄질 개연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만약 검찰이 차명계좌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재조사한다면 계좌 추적 내용을 훑어보는 것은 물론 사건 관계자 조사도 불가피하다. 검찰 관계자는 “수상한 계좌가 나올 경우 차명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당사자를 불러 조사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흔히 수상한 돈 거래가 있는 계좌를 가리켜 차명계좌라는 표현을 쓰지만 법적으로 차명계좌임이 확인되기 위해서는 그 계좌의 실제 주인이 따로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혀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수사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 계좌 추적이 모두 끝난 상황은 아니었다. 차명계좌 존재 여부를 확인하려면 의심스러운 계좌의 소유주를 밝혀야 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수사팀은 제한적으로 노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의 주변 계좌를 추적하다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추적 작업을 끝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차명계좌 또는 그렇게 의심할 만한 계좌가 나왔다는 게 조 후보자의 발언 내용이었다.

이미 잊혀진 당시 계좌 추적 내용을 모두 다시 확인하고 계좌주들을 소환 조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당시 수사팀 관계자들이 내사종결 전까지 차명계좌가 있었는지 여부를 밝히는 것으로 조사를 대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차명계좌로 최종 확인된 것이 있었는지만 밝힐지, 아니면 차명계좌로 의심할 만한 계좌의 존재 여부까지 포함할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검찰은 현재 차명계좌 존재 여부에 대해 “소설 같은 얘기”라고 일축하고 있다.

전진배·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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