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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경북 문경· 충북 충주: 한양 가던 길목마다 사연도 굽이굽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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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수많은 길들은 무수한 세월 속에 어제와 오늘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왔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을 따라 가노라면 삶의 숨결이 배어있는 역사와 문화를 만난다. 그리고 길의 끝에서 우리는 미래를 발견한다. 경북 문경시와 충북 충주시는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다. 신라가 2세기에 이미 하늘재(계립령)를 뚫었고 조선시대엔 새재(조령)가 열려 한양에서 부산이나 경남 고성으로 가는 통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길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신라 제8대 아달라 이사금 3년(156년)의 일이다.

백제 영토를 빼앗기 위해 신라는 하늘재(충북 충주시 상모면∼경북 문경시 관음리)를 개척했으며 이 길은 고려시대까지 이용됐다. 그리고 3년 뒤에는 죽령(충북 단양군∼경북 영주시 풍기읍)에 길을 냈다. 이 길은 낙동강과 남한강의 물길과 연결돼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영남지방의 조세를 거둬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충주에는 조세를 모으는 가흥창(지금의 충주시 살미면)이 있었다. 조선 태종 때 낙동강과 남한강을 잇는 가장 짧은 고갯길(조령)이 뚫리자 하늘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충주에서 조령을 넘어 문경으로 들어오다 보면 유곡역(幽谷驛·문경시 유곡동)이 있었다. 영남지방 72개 읍의 교통이 집중됐던 곳으로 조선시대 9개의 간선도로 중 상주∼대구∼밀양∼동래∼부산진과 상주∼성주∼고성을 잇는 2개 간선도로가 유곡역을 지났다. 그만큼 '문경의 역사'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의 역사'로 점철돼 내려왔다.

특히 문경은 주흘산(1천75m)·운달산(1천97m)·조령산(1천17m)·백화산(1천63m) 등 1천m가 넘는 산이 둘러싸고 있는 천연의 요새로 한국 전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임진란 때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 길을 따라 한양까지 올라갔으며 한국동란 때는 남진(南進)하는 북괴군을 문경전투에서 저지함으로써 낙동강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게 해주었다. 옛길의 흔적은 고모산성 부근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 유곡에서 고모산성에 이르는 5㎞의 길은 협곡지대로 관갑천(串岬川)이 흐르고 있다. 동쪽 바위벼랑을 따라 ㄴ자로 파서 길을 냈는데 하도 밟혀서 바위가 반들반들하다.

고모산성에 오르면 문경들판이 펼쳐지고 그 뒤를 주흘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문경읍에서 주흘산을 중심으로 동쪽 계곡을 따라 오르면 하늘재가 나타나고 서쪽 계곡으로 오르면 조령과 이화령(梨花嶺)의 들머리가 된다. 이러한 길의 역할은 조령→이화령(1925년)→이화령터널(2001년)로 넘겨지면서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그런가 하면 충주지방은 삼국시대 한반도의 중심지로서 영토확장의 각축장이었기 때문에 치열한 세력 다툼이 벌어졌던 곳이다.

1979년 충주지방의 지방사 연구단체인 예성동호회는 충주시(당시 중원군) 가금면 용전리에서 자그마한 비석 하나를 발견했다. 그로부터 약 40일 뒤 단국대 학술조사단에 의해 남한에 하나뿐인 고구려 비석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국보 제205호로 지정된 중원고구려비다.

고구려의 남하 시기와 범위를 확인시켜 주었던 이 비석은 해방 후 국내 고고학계의 3대 발견(경주 문무대왕릉·부여 무령왕릉)중 하나로 꼽히며 역사학계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다. 낙동강에 위치한 문경과 남한강가에 있는 충주는 영남과 중원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 지금은 국도 3호선이 지나고 있다. 문경과 충주는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있다. 지금도 조령 밑으로는 내년 완공예정인 국도 3호선의 조령터널과 2004년 개통되는 내륙고속도로의 공사가 한창이다.

도로를 새로 만들고 터널을 뚫는 등 '길의 변천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한반도 교통의 중심지인 충주와 문경. 이곳을 찾아가는 국도 3호선은 이천을 시작으로 돈산·문강·수안보·문경 등의 온천이 줄지어 있어 특히 겨울철 여행코스로 인기가 높다. 조인스닷컴(joins.com)에서 기사와 관련된 관광지를 동영상으로 소개하고 있다.

문경=김세준 기자

sj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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