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터걸 (下)공연 추천 1천건… 담당자는 1명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올해 초 법무부와 외교통상부가 예술흥행(E6) 비자 발급 문제로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자국 여성들에 대한 E6 비자 발급 자제를 우리 정부에 요청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비자 발급이라는 주권 행위에 간섭한다"며 발끈하면서도 공식 대응을 하지 못했다. 외교부도 이 요구를 받아들이고 조용히 넘어가자는 분위기였다.

우즈베키스탄은 왜 "자국민의 한국 입국을 어렵게 해달라"는 이해하기 힘든 요청을 했을까. 또 우리 정부는 공식적인 대응을 자제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우즈베키스탄 입장에선 자국 여성들이 한국에 가 임금 체불과 성매매 등의 피해를 볼까봐 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또 우리 정부는 이 문제가 국제 사회에서 더 이상 거론되길 원하지 않았다. 결국 우즈베키스탄에 E6 비자 발급을 일시 보류하는 선에서 문제는 일단락됐다. 전문가들은 "국제사회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관련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류만 보고 추천=취재팀은 최근 문화관광부 산하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가 외국인 여성 연예인의 공연을 추천한 서울의 한 관광업소를 찾았다.

오후 8시가 되자 현란한 조명 아래 비키니 차림의 댄서 10여명이 등장했다. 러시아·우즈베키스탄 등 옛 소련 지역 여성들이었다. 영등위의 추천서에 따르면 이 업소에서는 '밭을 매는 아낙네를 연상시키는 러시아 전통춤'이 공연돼야 했다. 그러나 공연이라기보다는 음악에 맞춰 가볍게 팔다리를 흔드는 게 전부였다. 일부 댄서들은 손님들의 테이블에 앉아 술을 따랐다. 그들은 댄서라기보다는 유흥업소 접대부로 버젓이 E6 비자의 입국 목적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영등위 실무자는 "당연한 결과"라고 대뜸 말했다. 그는 "서류만 보고 심사하는데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올해 10월까지 1천2백여 건의 공연을 추천했지만 현장에서 공연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한번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업무를 맡은 실무자는 한명뿐이었다.

◇책임지는 부처가 없다=E6 비자 발급 자체는 법무부가 하지만, 비자를 받기 위한 공연 추천은 영등위가 한다. 또 외국 연예인을 수입하는 공연기획사를 허가하는 곳은 노동부다. 외국 연예인 수입의 체계적 관리는 아예 불가능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게 된다.

노동부는 자본금·사무실 등 조건만 갖추면 공연기획사 허가를 내준다. 당연히 공연기획사의 난립으로 부도덕한 기획사까지 생겼다. 한 공연기획사 사장은 "일부 기획사는 성매매를 시키기 위해 외국인 여성들을 데려오고 있다"고 비난했다.

문화관광부의 한 관계자는 "영등위의 현재 인력으로는 공연추천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다"며 이 업무를 지방자치단체로 넘기고 싶어했다.

◇개선 방향=일본은 1990년대 초부터 예술흥행 비자를 고급예술과 일반흥행으로 구분해 관리하기 시작했다. 일반흥행 인력을 엄격하게 심사해 인터걸 유입을 줄인 것이다. 전북대 설동훈 교수는 "고급예술인과 유흥업소 공연 인력을 세분하고, 유흥업소 댄서들은 예술인이 아닌 근로자로 처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 일각에서는 현재의 예술흥행 비자를 폐지하고 새로운 입국 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현지 공관이 비자 발급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자 발급 서류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현지 인터뷰를 통해 윤락 소지가 있는 여성들의 입국을 걸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부처별로 나누어진 업무를 상호 보완하도록 총괄 부처를 지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관련 부처와 수사기관이 공연기획사나 유흥업소에 대한 정보를 서로 공유했다면 인터걸에 대한 인권침해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라는 견해다.

전문가들은 또 지속적인 단속과 정확한 실태조사를 통해 현재 체류 중인 외국 여성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움 주신 분 ▶고현웅 국제이주기구 한국사무소장▶김강자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김은정 여성부 권익증진국 서기관▶레이대루즈 디 콘페리도 주한 필리핀대사관 노무관▶박찬호 서울출입국관리소 과장▶박형진 포털사이트 '샐러리맨' 사장▶설동훈 전북대 교수▶이정호 샬롬의집 신부▶이철승·우삼열 창원 외국인노동자상담소 목사▶조배숙 민주당 국회의원▶조진경 외국인여성노동자상담소 간사▶존스 갈랑 주한 필리핀 노동자단체연합 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