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美' 수습할 뾰족한 대책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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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미 관계에 비상이 걸렸다. 주한미군 무한궤도차량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과 무죄 평결에 따른 우리 사회의 반미(反美)기류가 확산되면서 반세기에 걸친 한·미 동맹 관계는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미국의 분위기도 예사롭지 않다.

미국 하원 헨리 하이드 국제관계위원장을 비롯한 의원단이 방한 일정을 전격 취소한 것은 반미 기류에 대한 미국 내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준 것으로 보인다.

한·미 양국간 신뢰가 최대 기반인 동맹 관계가 삐걱거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선 정국을 맞은 정치권이 국민들에게 냉철한 대응을 주문하고 대책을 내놓기보다 국민 정서에 영합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사태는 더 꼬이고 있다.

◇봇물 터진 반미 감정=반미 기류는 갈수록 확산되지만 정부는 사실상 통제 능력을 잃은 상황이다.

여중생 사망 사건과 미군 무죄 평결로 촉발된 반미 감정은 각계 각층을 파고들고 있고, 반미주의 색채도 강하다. 과거의 반미가 일부 진보 세력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제는 초·중·고생은 물론 각계 각층의 일상 구호가 돼버렸다.

미군의 무혐의 처리는 반미 감정 확산의 직접적 계기지만 네티즌 사회의 정착,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 행태,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과 남북 화해·협력 진전에 따른 대북 인식 변화가 확대 재생산의 토양이 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요즘처럼 반미 주장이 각계 각층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온 적은 없었다"며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반미 기류를 누그러뜨리기 어렵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미 감정이 사실상 통제 가능한 범위를 넘어섰다는 얘기다.

◇평행선 상태의 한·미-시민단체=시민단체 요구사항과 한·미 양국 정부 입장 사이엔 공통분모가 없다. 시민단체는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개정을 요구하지만, 한·미 양국은 개선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개정을 통해 한·미 SOFA상의 형사재판 관할권 등이 미·독, 미·일 SOFA 수준으로 올라간 만큼 운용상의 개선밖에 안된다는 것이 한·미 양국정부의 입장이다.

주한 미국대사를 통해 간접 사과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끌어내기도 쉽지 않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주부터 주한미군에 대한 초동수사 강화를 비롯한 SOFA의 개선 문제를 집중 협의하지만 논의 결과가 국민의 반미 정서를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한다.

◇한·미관계 질적 재편 불가피=이번에 표출된 반미 감정에 따라 한·미 동맹 관계를 질적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반미 감정의 근저에 우리 국민의 불평등 의식도 깔려 있는 만큼 과거 보호자·피보호자 색채를 털어내고 한·미 동맹을 대등한 동반자 관계로 새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한·미 동맹이 내년에 50주년을 맞는 만큼 관계당국·민간인이 함께 지혜를 모아 한·미 동맹의 새 청사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영환 기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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