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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있는아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그 먼 나라를 아시는지 여쭙습니다

젖쟁이 노랑쟁이 나생이 잔다꾸

사람 없고 사람 닮은 풀들만

파도밭을 담장으로 삼고 사는 나라

예순 아들이 여든 어머니 점심상을 차

리고

예순 젊은이가 열 살 버릇대로

대소사 상다리 이고 지는 마을

사람만 봐도 개는 굼실 집 안으로 내빼

이름 잊혀진 채 그저 풀로만 불리는

강바랭이 씀바구 광대쟁이 독새기

-박태일(1954∼)'풀나라' 부분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넘어서면 그 다음에는 연령에 관계없이 늙는다.모두들 도시로 떠나버린 마을에서 팔순노모를 모시고 사는 육순아들은 그래도 행복하다. 죽음과 자기 사이에 아직도 어머니가 방벽처럼 생존하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에서도 노인층이 방풍보온 역할을 한다면 과장일까. 늙을 수조차 없다면, 무슨 희망으로 인생을 견뎌낼 수 있을까. 산타클로스는 하필이면 왜 수염이 하얀 노인으로 분장할까.

김광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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