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0代에 화가 꿈 펼친 예비역 장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퇴직금을 쪼개 1년간 세계 40여개국을 돌며 자연과 사람을 화폭에 담은 전직 예비군 중대장이 첫 개인전을 연다. 3일부터 천안시민회관에서 그림을 선보이는 강우석(姜佑錫·52·충남 천안시 원성동)씨는 가정형편 등으로 3군사관학교를 나왔다. 그는 통역장교 등으로 복무하다 1982년 예비군 중대장이 됐다.

"어릴 때부터 화가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인생사가 어디 뜻대로만 됩니까. 긴 세월 먼길을 돌아온 셈이죠."

姜씨는 34세 때 동사무소 중대장으로 일하면서 단국대(천안캠퍼스) 미대 회화과에 입학했다. 그 후 18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그림세계를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기회를 갖게 됐다.

姜씨가 '인생 2모작'을 결심한 건 2년 전. 그는 화가로 거듭나기로 결심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지난해 퇴직금 가운데 3천만원을 뚝 떼어 장도(壯途)에 올랐다. 그는 중국을 시작으로 티베트·베트남·라오스·태국·네팔·터키·인도·파키스탄·이란 등 아시아 각국을 돌며 이국적 정서를 화폭에 담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유럽 각국을 여행했다.

"왠지 정서가 통하고 마음이 와닿는 아시아 지역에서 오래 머무르는 바람에 유럽은 겉핥기로 구경했어요."

그러니 姜씨가 개인전에 내놓은 작품 30여점의 주요 배경은 아시아권일 수밖에 없다. 네팔의 한 채석장에서 막노동하는 남녀 인부들, 전쟁의 상처가 아직도 널려 있는 북부 베트남, 라오스의 황혼녘 갈대밭…. 작품 속의 강렬한 원색은 생명감을 느끼게 한다.

姜씨가 아프가니스탄에 입국하려던 무렵 9·11 테러가 일어났다. 그 바람에 파키스탄 국경에서 발이 묶였다. 당시 아프간 난민 2백만명이 모여 살던 국경도시에서 그가 그린 작품인 '페샤와르 사람들'엔 고생하는 민초들의 애환이 깃들여 있다.

30kg이 넘는 화구(畵具)와 배낭을 메고 각지를 헤매던 姜씨의 모습은 난민과 다를 바 없었다. 넉넉지 못한 여행비에 보태기 위해 그는 그림을 팔기도 했다. 아시아 사람들의 포근한 인심을 피부로 느낀 적도 있다. 그는 네팔 안나푸르나봉(峰)과 가까운 마을에서 값싼 하숙비로 2개월 동안 대접을 받으며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터키의 한 도시에선 낡은 호텔의 주인이 그의 그림에 반했다. 덕분에 姜씨는 10여일간 공짜로 먹고 잘 수 있었다.

그는 분식점을 운영하는 부인(48)과의 사이에 1남1녀(대학생)를 두고 있다.

"아내는 여행지로 김치·라면 등을 부쳐주었죠. 늦깎이 화가의 주책스런 여로에 불평없이 성원을 보내줍니다."

姜씨는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또 다른 여행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연의 원초성이 꿈틀대는 남미 대륙이 자신을 부르고 있다고 했다.

천안=조한필 기자 chop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