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일본 역사 바로잡기 반평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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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반평생을 일본 정부와 싸워온 일본 역사학자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 전 도쿄교육대(현 쓰쿠바대)교수가 지난달 29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9세.

고인은 32년 동안 일본 정부와 법적 투쟁을 벌여 일제 침략의 축소·은폐를 막고, 아시아의 피해 상황을 담은 역사교과서가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는 1965년 "교과서 검정제도는 교육과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에 위배된다"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에나가 재판'은 뜻있는 사람들의 역사왜곡 교과서 투쟁사에서 최대 사건이었다.

그는 "전쟁의 가장 큰 책임은 일본 국민이 정부 정책에 무조건 동조하게 만든 학교 교육에 있다. 차세대가 사는 시대에는 이런 일이 벌어져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강조한 고교 교과서 '신 일본사'를 집필해 62년 정부 검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정부가 "3백23곳의 내용이 부적당하다"며 검정에서 탈락시키고 수정을 요구하자 소송을 냈다.

이에나가 교수는 두차례 패소했으나 84년엔 "정부가 난징(南京) 대학살 등의 내용을 수정하도록 요구한 것은 잘못"이라며 세번째 소송을 냈다.

대법원이 97년 "교과서 검정제도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지만 정부가 '731부대''난징 대학살' 등 네곳의 삭제를 요구한 것은 재량권 남용으로 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해 그의 법적 투쟁은 32년 만에 막을 내렸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교원노조가 그를 적극 지원했고, 일반시민·교사 2만여명이 후원에 나섰다. 아사히(朝日)신문은 1일 인터넷판에서 "이에나가 재판은 일반 시민이 정부의 교육통제에 관심을 갖고 비판하는 계기를 가져왔고, 교과서에 일본의 가해 사실이 늘어나도록 했다"고 평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day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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